"조선 양반의 풍류, 맛으로 재현했죠"
지난해 모던 한식 레스토랑 ‘이십사절기’가 미슐랭 1스타 등급을 받았다. 당시 총괄셰프는 유현수(사진). 유 셰프는 지난 2월 직접 서울 가회동에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두레유’를 열었다.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일본, 호주, 영국 등 여러 나라의 특급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주영국 한국대사관 총괄셰프로도 일했다. 1년간 절에서 생활하며 사찰 음식을 배운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에서 유 셰프를 만났다. 그는 무언가 준비해 온 것을 꺼냈다. 옛 그림 한 장이었다. 김홍도의 ‘설후야연(雪後夜宴)’. 눈이 하얗게 쌓인 산기슭에서 조선시대 양반과 여인들이 화로에 소고기를 구워먹는 장면이다. 한국인들은 조선시대부터 소고기 맛에 빠졌다. 양반들 사이에선 화로에 숯불을 피워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이른바 ‘난로회’가 유행이었다. 서른아홉 살의 셰프는 이 맛을 그대로 내기 위해 액화질소와 놋화로를 사용해 ‘설야멱적’을 만들어냈다.

“몇 년간 한국 고유의 구이문화를 연구하다 고서와 풍속화를 통해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채식 위주의 한국인들은 조선시대부터 고기를 불 위에서 굽고 바로 눈 위에서 식히고, 다시 굽고, 식히고를 반복하면서 고기를 부드럽게 해먹었다”며 “얼음물에도 담가 보고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하다가 분자요리에 많이 쓰이는 액화질소를 활용해 ‘설야멱적’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그가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두레유’를 낸 이유도 설야멱적과 맥이 닿아 있다. 두레유에서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제철 재료로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사찰음식인 바루 코스와 제철 산나물 등으로 만든 채집 코스도 있다.

유 셰프는 한식당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디자인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20대 초반부터 조리학원에 다녔다. 한식, 일식, 양식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자격증을 땄다. 주방에서 경력을 쌓은 뒤 3~4년간 전국의 유명 한정식집을 돌아다니며 손맛을 배웠다.

그러다 갑자기 해외로 떠났다. 그의 손에는 미슐랭 가이드북이 들려 있었다. 전 세계 유명 레스토랑의 문을 두드렸다. 이 긴 여행에서 얻은 결론은 한식이었다. 그는 “사라지고 있는 전통 식문화가 너무 아까웠다. 어떻게 한식을 파인다이닝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잊혀지는 것들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전국의 5일장을 돌아다니며 제철 재료를 구한다.

유 셰프는 두레유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유럽 식당들이 4대, 5대를 이어 레시피를 전수하듯 긴 호흡으로 한식의 전통을 재해석하고 싶다.”

제주=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