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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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식품 구매대행·배달 서비스 기업 ‘인스타카트’는 미국에서 식품업계의 ‘우버’로 불린다. 이용자가 인스타카트 웹사이트나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홀푸드나 코스트코 등의 매장에서 파는 물건을 골라 주문하면 해당 제휴점에서 대신 물건을 사 집 앞까지 배달해준다. 인스타카트는 구매 주문에 따라 마트에 들러서 대신 쇼핑할 수 있는 배달원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인스타카트는 구글, 아마존과 정면 승부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구글 쇼핑익스프레스, 아마존 프레시에서 살 수 있는 식품이 한정돼 있다는 틈새를 노렸다. 지난 3월 세쿼이아캐피털, 와이콤비네이터 등 미국 유명 벤처캐피털로부터 4억달러를 추가로 투자받아 34억달러(약 3조8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기업가치가 2014년 말 20억달러로 평가받은 지 3년 만에 14억달러 높아진 것이다.

인스타카트는 아푸바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스무 번의 ‘창업 실험’ 끝에 일군 회사다. 메타 CEO는 2012년 인스타카트를 창업하기까지 리걸리치, 그루폰푸드 등 20개의 서비스를 내놨지만 번번이 실패의 쓴맛을 봤다.

실패 연구 통해 물류비용 낮춰

“왜 스무 번이나 실패했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메타 CEO가 언론과의 인터뷰마다 받는 질문이다.

그는 변호사 전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리걸리치를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았다. 메타는 “돌이켜보니 리걸리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며 “변호사가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정보를 공유하는지 전혀 모르고 SNS부터 만들었다”고 말했다. 막연히 변호사 전용 SNS가 있으면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고,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변호사들은 정보기술(IT)을 활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정보 공유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SNS는 그대로 방치된 채 서비스를 중지해야 했다.

그는 이때부터 어떤 서비스가 필요할 것 같다는 ‘직감’만 믿고 무작정 서비스부터 개발하던 것을 멈췄다. 우선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던 시절 식료품을 사러 갈 시간도 없었던 자신과 주변의 경험은 인스타카트 창업의 실마리가 됐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실패 사례도 연구했다. 1996년 설립된 온라인 식료품 배송업체 웹밴(Webvan)은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지만 창고, 트럭 등 운송 비용과 식료품 재고 유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2001년 문을 닫았다. 미국 IT 전문매체 시넷은 웹밴을 IT 거품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하기도 했다.

메타는 창고와 트럭을 소유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했다. 고객이 인스타카트를 통해 주문하면 배달원이 오프라인 유통매장에서 신선식품을 대신 구매해 당일 배송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신선식품 보관과 배송 차량 운행에 비용을 쓰는 대신 배달원과 소매점 관리에 집중했다.

배달 시간은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후로 설정할 수 있고, 희망하는 배달 소요시간에 따라 수수료가 책정되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은 수수료를 내지만 대신 직접 쇼핑을 하기 위해 드는 교통비 등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6캔 맥주 배달로 미팅 이끌어내

인도에서 태어난 메타는 2000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州)에 있는 워털루대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블랙베리, 퀄컴, 아마존 등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2010년 아마존을 퇴사한 뒤엔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찾아 헤매면서 20개의 서비스를 개발했다.

스무 번의 실패 끝에 내놓은 인스타카트는 서비스 초기부터 성공 조짐이 보였다. 그는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이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서비스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기존 서비스처럼 실패하진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업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서 투자 유치에 나섰다. 그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보육기관)인 와이콤비네이터에 투자 지원을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매년 두 번씩 3개월간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두 달 전에 신청이 마감된 상황이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의 면모는 여기서도 발휘됐다. 메타는 와이콤비네이터 리더십팀을 찾아갔지만 이번엔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와이콤비네이터 파트너 중 한 사람인 게리 탄도 “거의 불가능하다(nearly impossible)”는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거의’란 말에 희망을 걸었다. 탄에게 인스타카트를 이용해 여섯 개짜리 캔맥주 한 팩을 보냈고, 마침내 미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이 미팅에서 그는 와이콤비네이터 프로그램 참여 자격을 얻었다. 메타는 또 와이콤비네이터를 통해 맥스 멀른과 브랜던 리어나도 두 공동창업자를 만났고, 초기 서비스 확장을 위한 시드머니(종잣돈)도 투자받았다.

베저스 스타일로 아마존과 경쟁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인스타카트는 미국 식료품 배송 시장에서 아마존과 구글, 월마트 등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서비스 지역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인스타카트를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 수백 개의 지역에서 코스트코, 퍼블릭스 등 100여개 유통업체가 파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구매대행과 배달 서비스를 담당하는 시간제 근로자는 1만명에 달한다. 메타 CEO는 “2018년 말까지 150개 유통거점을 두고 시장을 3~4배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메타는 아마존에서 일하던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CEO를 자신의 롤모델 중 한 사람으로 꼽았다. 아마존도 2007년부터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인 ‘아마존 프레시’를 내놓고 24시간 안에 식료품을 배송하고 있다. 메타는 아마존에서 공급망 관리 시스템 분야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베저스의 리더십 스타일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안주하지 않는 것이 베저스나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이라며 “기존 방식을 바꾸면서 한계상황을 돌파할 때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