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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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의 명문 팀인 인터밀란이 중국 업체에 팔렸다는 소식에 세계 축구 팬은 깜짝 놀랐다. 인터밀란을 인수한 기업이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쑤닝윈샹(蘇寧雲商)이었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축구굴기’를 강조한 이후 중국 기업이 앞다퉈 해외 명문 축구구단 인수에 나섰지만 쑤닝이 인터밀란을 사들인 것은 중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쑤닝은 ‘중국판 하이마트’로 불리는 중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매장 수가 1500개를 넘는다. 알리바바, 징둥닷컴 등 온라인 유통업체의 공습에 오프라인 유통기업이 잇달아 무너지는 환경에서도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10%가량 늘었다. 쑤닝을 이끄는 인물은 평범한 회사원 출신인 장진둥(張近東) 회장(54)이다.

1650만원으로 창업 … 中 최대 전자제품 유통기업으로

장 회장은 중국 대륙 가운데를 흐르는 양쯔강 하류 안후이성에서 태어났다. 1984년 난징(南京)사범대 중문과를 졸업한 뒤 난징의 한 국유기업에 입사했다. 당시 중국에선 ‘샤하이’(下海·정부 관료가 사업에 뛰어드는 것) 열풍이 불었다. 혈기왕성하던 장 회장도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장 회장은 퇴근한 뒤 에어컨을 설치하는 일을 했다. 이를 통해 3년 동안 10만위안(약 1650만원)을 모았다. 이 돈으로 1987년 난징에서 작은 에어컨 대리점을 차렸다. 막 가전제품 소비붐이 불던 때여서 컬러TV,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 대리점만 내면 누구나 돈방석에 앉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에어컨은 찬밥 신세였다. ‘사치품’으로 여겨져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곤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장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경제 발전으로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조만간 에어컨도 필수 제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확신을 바탕으로 1990년 에어컨 전문 도매업체인 쑤닝자오가전(蘇寧交家電)을 세웠다. 성공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1992년부터 중국의 3대 화로(火爐)로 불릴 정도로 무더운 지역인 난징에서 에어컨은 가장 잘 팔리는 가전제품으로 떠올랐다.

그는 업계에서 처음으로 무료 배송-설치-애프터서비스(AS) 시스템을 도입했다. 300명의 에어컨 설치기사를 뽑을 정도로 서비스에 큰 비중을 뒀다. 이게 대박을 쳤다. 쑤닝은 단일 제품, 단일 모델로 연매출 3억위안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역발상 투자로 급속히 성장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몰아닥친 1998년, 장 회장은 종합 전자제품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다른 기업들은 사업 규모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맬 때 나홀로 확장 정책을 편 것이다. 에어컨 단일 품목으로는 마진이 작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위기 시 역발상 투자는 호황 때 빛을 발했다. 경기 회복과 함께 쑤닝의 사업은 놀라운 속도로 커나갔다. 2001년에는 평균 40일마다 점포 한 곳을 더 세웠다. 3년 후에는 평균 5일에 한 개꼴로 문을 열 정도로 중국 전역에 쑤닝 매장을 깔았다.

2004년 7월 쑤닝은 선전증시에 상장하면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29.88위안으로 출발한 주가는 하루 만에 32.70위안으로 뛰어 당시 중국 기업 최고 주가를 기록했다. 장 회장의 재산도 하룻밤 새 12억위안으로 불어났다. 2012년에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부호 13위에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장 회장의 통찰력이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했다. 그는 온라인에 주목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기여서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 오프라인 유통기업은 쇠락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지만 장 회장은 다르게 생각했다. 전자상거래를 협업 대상으로 봤다. 중국 유통업계에서 처음으로 ‘온·오프라인 융합 유통시스템’을 구축했다.

‘체험과 서비스는 오프라인에서, 구매는 온라인에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 상품 서비스는 전국 1000여개 매장에서 직접 책임졌다. 온라인으로 산 스마트폰 보호필름을 매장에서 무료로 붙여주는 방식이었다. AS 문제로 불만이 많았던 온라인 소비자들이 환호했다.

금융 서비스 시장에도 진출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불경기 한파가 몰아친 2015년, 쑤닝의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4.4% 늘어난 1355억위안(약 22조6800억원)을 기록했다. 매장 수는 지난해 1500개를 넘어섰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쑤닝이거우(蘇寧易購)의 성장은 더 눈부시다. 2015년 소매거래총액 502억위안을 넘긴 데 이어 지난해엔 전년 대비 6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쑤닝이거우는 알리바바, 징둥닷컴과 함께 중국 3대 전자상거래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장 회장은 2013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유통은 물론 금융, 물류, 제품 서비스를 아우르는 사업을 시작했다.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착안한 ‘윈샹(雲商)’이 그것이다. 작년 말 기준 쑤닝의 온라인 금융서비스 이용자는 1000만명에 육박했다. 쑤닝 고객은 윈샹에서 개인 대출을 받고 쇼핑을 위한 할부 금융도 이용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쑤닝에 대해 “중국 기업 중 가장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하는 기업 가운데 한 곳”이라며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와 새로운 유통 모델을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장 회장은 “창업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꼭 대단할 필요는 없다.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큰일이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가 알려주는 창업과 성공을 위한 조언이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