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고객이 에스티로더 화장품 매장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모습.
남성 고객이 에스티로더 화장품 매장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모습.
여성들의 몫으로 분류되던 색조화장 영역에 진출하는 남성이 늘어나고 있다. 외모 관리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남성을 일컫는 ‘그루밍(grooming)족’이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여성 못지않게 화장에 관심이 많은 남성의 등장으로 화장품기업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남성화장품 매출 연 30% 증가

한동안 활동이 뜸하던 개그맨 김기수 씨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다. 그가 택한 콘텐츠는 ‘색조화장’이다. 웬만한 여자도 부담스러워하는 진한 스모키(눈매를 강조하는 화장), 컨투어링(윤곽을 강조해주는 메이크업) 등을 시연하며 ‘젠더리스 메이크업(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법)’을 알리고 있다. 김기수 씨 외에도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 ‘레오제이’ ‘큐영’ ‘후니언’ 등이 영상 콘텐츠를 통해 실생활에서도 유용한 남성 메이크업을 시연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시선이 관대해지며 메이크업에 관심을 두는 일반 남성이 늘어나고 있다. 화장품기업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운영하는 헬스&뷰티(H&B) 스토어 올리브영에 따르면 남성 화장품 카테고리 매출 증가율은 3년 동안 연평균 40%에 달할 정도로 남성 소비자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성 메이크업 제품의 매출은 2016년 기준 전년 대비 70%나 성장했다.

주목할 점은 남성들의 화장품 구입 패턴이 기초화장품, 왁스류를 넘어 색조 메이크업, 제모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코덕(화장품 덕후)’ 사이에서 혁신이라고 불린 ‘쿠션 파우더’의 남성용 버전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리브영의 남성 전용 브랜드 ‘XTM 스타일옴므’에서 선보인 ‘올인원쿠션’ 제품은 스킨케어 및 메이크업 기능을 한 번에 선사하는 간편한 제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16년 매출이 전년보다 75% 증가했다. 지난해 화장품 브랜드 ‘문샷’에서 남성 고객을 겨냥해 가수 지드래곤의 이름을 따 출시한 ‘GD 쿠션’은 출시한 지 2주 만에 준비된 물량 1만개가 ‘완판(완전판매)’됐다.

눈썹정리에 관심있는 남성도 늘어

피부 보정을 넘어 최근엔 눈썹 정리에 관심을 두는 남자가 늘어나고 있다. 눈썹은 ‘얼굴의 지붕’으로, 깔끔한 눈썹을 만드는 것은 색조화장을 하기 전 필수 준비 단계로 꼽힌다. 화장품 브랜드 ‘베네피트’는 매장에서 직접 눈썹을 정리해주는 ‘브로우바 뷰티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9월 베네피트가 국내에서 ‘브로우바 뷰티 라운지’의 문을 열었을 때는 고객의 99%가 여성이고 1%가 남성이었다. 하지만 2016년 브로우바 뷰티라운지를 찾은 남성 고객 수는 약 4만명으로, 전년 대비 약 12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이미 1조원을 넘었다. 성장세도 빨라 조만간 1조5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화장품업계 또한 남성 화장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루밍족이 늘면서 남성 고객은 이미 화장품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며 “남성 화장품 시장도 스킨케어 중심에서 색조·기능성 등으로 확대·다변화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남성용 스킨로션·왁스·향수를 지나 쿠션용 파운데이션, 눈썹 정리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일반 남성이 립스틱·아이섀도까지 손을 댈 것이라는 전망은 회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남성 화장품 시장의 동향을 살펴보면 꾸미기보다 ‘깔끔한 인상’을 만드는 쪽에 초점이 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리스 메이크업’이 대중화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지 한경비즈니스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