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형성되지 않았던 고대 도시국가들은 빈번히 다른 국가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재산을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때 고대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공간이 사원이었다.
[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최초의 은행은 사원이었다?
오늘날 은행이 없는 일상생활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은행이 없다면 월급을 보관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소소한 지출은 모두 현금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요금, 휴대폰 요금, 각종 공과금 등을 모두 해당 회사에 직접 방문해 지급해야 할지도 모른다. 은행 대출 내지 할부 서비스가 없다면 아파트나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거금의 일시불을 지급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한 은행은 언제부터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을까?

초창기 은행은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가장 원시적인 은행의 기능은 귀중품을 보관하는 공공금고에 지나지 않았다. 물물교환으로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던 시대가 지나고, 금화 내지 은화와 같은 화폐나 귀금속을 거래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들 화폐와 귀중품을 보관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게 됐다.

특히 강력한 중앙정부가 형성되지 않았던 고대 도시국가들은 빈번히 다른 국가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재산을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때 고대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공간이 사원이었다.

사원은 신을 모시는 곳으로, 폭력이나 절도와 같은 비도덕적인 일이 금지된 신성한 장소다. 또한 신이 지켜보고 있는 신성한 곳에서 다른 사람의 귀중품을 몰래 훔치는 행위는 저주 내지 불행을 자초하는 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강도나 폭도들의 침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사원은 많은 사람들이 빈번히 방문하는 공공장소다. 따라서 누가 언제 방문했는지 무엇을 들고 갔는지 확인해 줄 수 있는 수많은 목격자들이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사원에서 아무도 모르게 무언가를 들고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설사 누군가 몰래 뭔가를 가져갔다 하더라도,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수많은 목격자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최초의 은행은 사원이었다?
이런 사원의 공공성은 도난을 방지하고 도난 시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준다. 초기 사원은 귀중품을 보관해 주고 직접적으로 대가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점차 많은 사원들이 이를 비즈니스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수수료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델포이와 올림피아의 많은 사원들은 사람들이 맡겨 놓은 금은보화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후 은행의 기능은 상거래의 발달과 함께 점차 추가됐다.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북부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유럽 및 다양한 지역과 교역한 로마에서는 단순 보관 기능뿐만 아니라 환전 서비스가 추가로 필요했다. 또한 빈번한 상거래를 지원하기 위한 영수증 발급과 어음 발행도 필요했다. 때로는 물건을 담보로 저당을 잡아줄 사람도 필요했다. 당시 로마는 이런 시민들 요구에 부합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사원 이외에 귀중품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물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금융 서비스를 주업으로 하는 환전상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또한 상인들의 어음과 영수증 발급 업무를 도와주는 민간 금융전문가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몇 해 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발표한 글로벌핀덱스(Global Findex)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까지 전 세계 인구 중 금융 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불과 절반(5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또한 금융 계좌를 단 하나도 개설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무려 20억명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모바일 금융 서비스 역시 전 세계 인구 중 불과 2%에 해당하는 사람만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드는 내용일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금융 서비스가 너무나도 친숙하다는 것을 방증해 준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