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털어주는 기자] 아재들은 알랑가 몰라…뉴욕 수제버거의 '불맛'
8년 전인가. 갓 입사한 후배들에게 점심을 샀습니다. 꽤 유명한 회사 근처 수제버거집이었죠. 7~8명이 맥주 한 잔씩 곁들였더니 10만원이 훌쩍 넘었던 것 같습니다. 반응도 좋았습니다. “맨날 폭탄주에 족발 먹다가 이런 데도 오다니”, “역시 젊은 여자 선배라 센스가 다릅니다” 등.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우쭐해져서 편집국에 돌아왔습니다. 선배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죠. 엘리베이터에서 회사 임원 한 분을 만났습니다. 뭘 먹었냐고 물으시더군요. 후배들은 꽤나 흥분된 톤으로 “김 선배가 OOO버거 사주셨습니다!”라고 합창을 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쯧쯧, 후배들한테 그런 싸구려 음식이나 사주다니….” 다음 장면은 상상이 되시죠. 1초가 1분 같은 기나긴 정적. 그땐 ‘개저씨’나 ‘아재’ 같은 유행어도 없을 때 라 뭐라 떠오르는 단어도 없었습니다.

1980년대생들에게 햄버거는 특별합니다. 그들이 청소년기를 보낸 1990년대가 롯데리아, 맥도날드의 전성기였으니까요. 햄버거 가게는 단체 생일 파티 명소이자, 친한 친구와 토요일 오후를 함께 보내는 곳이었고, 동네 떡볶이집의 강력한 경쟁자였습니다. 가장 트렌디한 문화를 즐기는 것 같은 묘한 우월감마저 주던 장소죠. 요즘도 주말만 되면 버거 생각이 납니다. 수준 높은 수제버거집들이 생겨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요.

요즘 발견한 남다른 수제버거집이 있어 소개합니다. 서울 강남역 사거리 골목 안에 있는 ‘NY B&B’. 작년 9월 문을 연 이곳은 사실 외국인들 사이에서 더 유명합니다. 미슐랭 레스토랑 출신 셰프들과 뉴욕 월가의 대형 펀드회사 부사장을 지낸 마크 김과 손잡고 “정통 뉴욕 스타일의 버거를 만들자”고 시작했답니다. 마크 김은 178개 레스토랑의 경영과 투자를 담당한 노하우를 이 가게에 쏟아 넣었습니다. 직접 서빙도 하고 손님도 맞습니다.

이곳에선 미국산 프라임등급 소고기 척롤과 차돌양지, 토시살을 패티에 사용합니다. 불판에 내리치는 ‘스매싱’ 방식을 고집하고요. 프라임등급은 미국산 소 한 마리에서 약 2%밖에 안 나올 만큼 귀합니다. 호텔 스테이크용으로 주로 쓰이지요. 한입 베어 물면 육즙이 풍부하게 살아있고, 간도 심심합니다. 시그니처 메뉴는 더 비앤비, 더 와사비, 더 버바검프. 셰프들이 만든 특제 소스는 달콤하고 알싸한 맛이 특징입니다. 번은 담백하고 드라이해서 눅눅해지지 않더군요.

NY B&B 말고도 최상급 미국산 소고기를 이용해 만드는 개성 있는 가게가 많습니다. 마침 오는 15일부터 28일까지 26개 버거집이 뭉쳐 ‘아메리칸 버거위크’를 연다고 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이벤트가 풍성합니다. 아, 이번에 작은 용기를 내볼까요. 그분에게 살짝 버거위크 링크를 공유하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