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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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 1’은 대학을 마치고 쌀을 팔았다. 산지에서 오리쌀을 받아다 백화점에 납품하는 중간상인 노릇을 했다. 농부가 대기업과 거래를 튼 뒤 쫄딱 망했다. 하지만 뭐든 팔 물건만 있다면 판매엔 자신이 있었다.

#2. ‘남자 2’는 ROTC 장교 딱지를 달고 사회로 나왔다. 리더십과 책임감은 그의 큰 무기였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하는 그를 좋게 평가한 기업 인사담당자가 많았다. 지원한 여러 기업에 합격했다.

두 남자는 2006년 나란히 동아오츠카에 입사했다. 동아제약과 일본 오츠카제약이 합작해 설립한 식음료회사다. 쌀을 팔던 남자는 재무팀에, 장교 출신은 영업팀에 배치됐다. 10년이 흘렀고, 두 사람은 지난해 사장에게서 “우리 회사의 최고 보배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브랜드매니저로서 담당 제품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남자 1’은 오로나민C 브랜드매니저인 홍광석 팀장(40), ‘남자 2’는 포카리스웨트 브랜드매니저인 김동우 과장(38)이다.

◆“2등 전략 쓰면 평생 2등밖에 못 한다”

[人사이드 人터뷰] "2등 전략 쓰면 평생 2등만…1등과 무조건 반대로 갔죠"
오로나민C는 동아오츠카가 2015년 내놓은 종합 비타민 음료다. 이 시장엔 이미 강력한 경쟁 제품이 있었다. 홍 팀장은 “시장을 선점해 소비자로부터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던 경쟁 브랜드와 무조건 정반대 길을 가자는 게 전략이었다”며 “안정적인 2등만 하자는 생각으로 마케팅을 하면 평생 2등 브랜드밖에 못 한다고 생각해 주요 타깃층부터 마케팅 콘셉트까지 1등 브랜드와 다른 노선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비타민 함유량을 강조하는 대신 종합 영양음료라는 점을 내세웠다. 더 높은 비타민 함유량을 부각한 후발 주자들이 1등 제품에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오로나민C는 원래 2차 세계대전 이후 영양실조를 앓던 자국민을 위해 1965년 일본 오츠카제약이 개발한 음료다. 5종류의 비타민과 3종류의 필수 아미노산으로 제품 성분을 구성한 것도 영양 섭취에 대한 일본 국민의 수요를 반영한 것이다.

[人사이드 人터뷰] "2등 전략 쓰면 평생 2등만…1등과 무조건 반대로 갔죠"
홍 팀장은 타깃층도 새로 잡았다. 기존 비타민 음료 시장은 주로 20대 여성 소비층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는 더 젊은 이미지를 부각하고자 10대를 겨냥했다. 10대들은 신제품에 대한 반응도 빨랐다. 학교 근처에서 판매하기 위해 카페인과 당류 함량을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에 맞춰 일본에서 판매 중인 오로나민C와 다르게 선보였다. 20~30대 회사원들도 겨냥했다. 홍 팀장은 “회사원 하면 사회적으로는 경기불황, 개인적으로는 고된 업무로 인한 피로 등이 떠올랐다”며 “오로나민C의 캐치프레이즈(제품을 알리기 위한 광고문구나 표어)인 ‘생기발랄’은 여기서 나왔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리는 일이 남아 있었다. 회사 내부에선 경쟁 제품의 모델보다 더 유명한 스타를 모델로 쓰자는 의견이 나왔다. 홍 팀장의 생각은 반대였다. 인지도가 부족한 제품에 유명 스타를 모델로 쓰면 사람들의 관심이 모델로 쏠려 정작 소비자가 제품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제품 속성처럼 다재다능한(종합영양) 끼가 있을 것, 제품에 대한 간접적 연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는 모델일 것, 광고비 예산을 고려해 너무 유명하지는 않을 것 등이 고려됐다. 이렇게 해서 방송인 전현무 씨가 모델이 됐다. 그가 등장한 작년 오로나민C 광고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요들송에서 따온 중독성 있는 노래 멜로디에 코믹한 이미지의 전씨가 ‘생기발랄하게’ 몸을 흔들어대는 광고는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홍 팀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광고에서 나온 춤을 따라한 패러디 영상을 동영상 사이트에 올렸다. 패러디 1호였다. 이후 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오로나민C 광고 패러디가 유행처럼 번졌다. ‘여고생 버전’ ‘고3 버전’ ‘OO지역 버전’ ‘OO학교 2학년3반 버전’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경쟁적으로 업로드됐다. ‘OO무역 영업팀 버전’ ‘OO실업 신입사원 버전’ 등 회사원 영상도 등장했다. 유명 동영상 사이트에 관련 패러디만 1만5000건이 넘게 올라왔다. 홍 팀장은 “광고 영상을 소비자가 직접 따라하는 것만큼 제품을 뚜렷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생각에 1호 패러디를 직접 올렸다”며 “재밌는 영상으로 소비자한테 친근하게 다가간 것이 목표 판매액의 두 배 이상을 달성할 수 있던 비결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내에 출시된 지 얼마 안 됐다는 점을 고려해 회사는 당초 작년 판매액 100억원을 목표로 잡았지만 목표치의 100%를 뛰어넘는 234억원어치를 팔았다.

◆“1등 제품의 고민은 새로운 소비자 발굴”

[人사이드 人터뷰] "2등 전략 쓰면 평생 2등만…1등과 무조건 반대로 갔죠"
김동우 과장은 다른 고민이 있었다. 그는 이미 이온음료 시장에서 1등 제품인 포카리스웨트를 맡았다. 잘해야 본전, 매출이 조금이라도 떨어지기만 하면 사장의 불호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 과장은 “30년 가까이 소비자로부터 사랑받아왔으니 올해도 현상 유지만 하자는 생각을 가장 경계했다”며 “1등 브랜드지만 여전히 제품을 접해보지 않은 소비층이 반드시 있다는 전제로 이들을 찾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병원을 주목했다. 포카리스웨트는 1980년 일본 오츠카제약 직원이 멕시코 출장을 가던 중 배탈이 나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맞은 링거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제품이다. 링거액인 생리식염수를 기반으로 마실 수 있는 제품을 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김 과장은 “그동안 이온음료는 주로 수분 보충을 위한 음료로 알려져 있어 스포츠 활동을 끝낸 사람들이 즐겨 마셔왔다”며 “하지만 정작 이온음료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전해질 부족이나 탈수 등을 겪는 환자들”이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병원 매점에 영업력을 집중하는 한편 의사와 병원 직원들에게 기능 부분을 강조했다.

여름 대신 겨울을 겨냥한 ‘거꾸로 전략’도 통했다. 이온음료 매출은 70%가 여름에 발생한다. 포카리스웨트 역시 여름 승부가 1년 농사의 성패를 결정한다. 김 과장은 여름에 집중된 포카리스웨트의 매출 구조를 분산시켜야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겨울에도 소비자들이 매대에서 포카리스웨트를 집어드는 게 중요했다. 김 과장은 키워드 하나를 찾았다. ‘건조’였다. 겨울에는 난방 등으로 사람들이 건조함을 느끼는 것에 착안했다. 그는 “대형마트 등에서 소비자가 포카리스웨트를 보는 곳에 ‘건조할 땐 포카리스웨트’라는 문구도 같이 보이도록 했다”며 “이런 전략이 통해 작년 매출 성장률은 무더웠던 여름보다 겨울이 더 높았다”고 설명했다. 겨울 매출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포카리스웨트는 작년에 1380억원어치를 팔았다. 제품 출시 29년 만에 가장 많은 연간 판매액이다.

김 과장은 좋은 브랜드매니저가 되기 위해선 주변의 실패 사례를 주의 깊게 관찰해보라고 했다. 그는 “실패는 성공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왜?’라는 질문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며 “실패 사례집을 만들어 매일 읽고 있다”고 말했다.

■ 브랜드매니저의 세계

'마케팅의 총지휘자'…제품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모든 과정 책임


브랜드매니저(BM)는 제품 탄생부터 소멸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다. 흔히 본인이 맡은 제품을 자식처럼 여긴다고 한다. BM은 ‘마케팅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현업에서 활동하는 브랜드매니저들은 이런 말에 손사래 친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재무, 광고, 영업에 이르기까지 제품이 탄생해 소비자에게 가는 데 BM이 관여하지 않는 단계가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담당하는 제품의 생산공장 식단까지 달달 외워야 그 제품이 성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해당 브랜드를 완전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BM에 ‘마케팅 총지휘자’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브랜드매니저라는 직책이 생긴 미국에서 이들이 마케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주로 브랜드 판매 전략과 제품에 가치를 입히는 일을 했다. 이를 위해 브랜드 이미지에 관한 리서치를 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전략을 재수정하는 서류 작업이 중심이 됐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이익과 손실을 빠르게 판단하고 마케팅 예산을 관리하고, 시장 점유율에 신경쓰는 주로 ‘숫자’와 관계된 일을 하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선 좀 다르다.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의 덕목이 좀 더 요구된다. 제품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1차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따라서 다방면의 지식과 경험은 필수다. 이 때문에 곧바로 BM으로 입사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영업, 재무, 마케팅 등 다양한 부서를 경험한 뒤 BM 직책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마다 BM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5년 잡코리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BM은 대학생이 선호하는 직업 2위에 오를 정도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채 시즌이 되면 BM에 지원할 길이 열린다. 주로 화장품, 패션, 식품업체처럼 브랜드 중심으로 운영하는 기업에서 BM 수요가 많다.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