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재산권에 제한을 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 '세무조사권'을 가지고 있는 국세청은 오랜 세월 동안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시달려왔다. 잊을만하면 펑 터지는 대형 사건에 국세청이라는 기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생성해 왔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그야말로 사회적 논란이 극심했던 사례가 지난 1997년 터진 '세풍(稅風)' 사건이다.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세무조사 편의를 미끼로 당시 '대세론'을 타고 있던(결과는 낙선이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선거자금 166억원을 23개 기업으로부터 모금해 바친 사건으로 엄청난 풍파를 몰고 왔다.


반백년 국세청 역사의 최대 치욕으로 남아 있는 이 사건은 국세청 개혁 움직임의 단초를 제공했고 2년 뒤인 1999년 국세청 개혁의 방편으로 '국세청법(당시 국세공무원법)' 제정 시도로 연결됐다.


대형 사건 터지고 난 후, '숙제'처럼 따라나왔던...



1999년 안정남 전 국세청장은 '제2의 개청'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국세행정 개혁을 추진했다.


행정과 조직체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 확보하고 세무공무원들의 비리유인 차단을 최대 목적으로 삼은 '국세공무원법' 제정이었다.


'국세청법'의 시초나 다름없는 당시 안 전 국세청장이 내세운 국세공무원법의 주요 내용은 국세공무원을 특정직(국세행정직)으로 전환하고 국세행정고시(5급)를 신설하며 국세행정수당(세수증대포상금)을 지급하는 한편 만성적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 계급정년제(5급 15년, 4급 13년, 3급 5년, 2급 4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금품 등 비리행위에 연루된 국세공무원의 처벌 수위 또한 대폭 강화하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법 제정 취지 이외에 이슈(특정직 전환 등)가 더 부각, 관계기관(행정자치부·재정경제부) 반대에 부딪히면서 국세공무원법 도입 시도는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국세청법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2007년과 2013년이었다.


주목되는 부분은 정치권에서 국세청법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2007년 당시 엄호성 전 국회의원 주도하에 세상에 나온 국세청법은 국세공무원을 특정직화해 일반행정 공무원과는 다른 보수체계를 적용하고 계급정년제를 도입하는 내용은 1999년 국세공무원법의 틀과 같았지만 핵심은 국세청장 임기제(2년 단임제) 도입이었다.


국세청장 임기제는 당시 대선에 출마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기 때문에 국세청 안팎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국세청법 도입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그러나 '뒷심'이 부족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공약도 그저 '공(空)약'으로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6년 뒤인 2013년 정호성 당시 민주당 의원(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시 국세청법 제정을 꺼내들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1999년과 마찬가지로 2007년과 2013년 국세청법 제정 추진이 시도된 배경에는 국세청 고위직들의 비리가 단초가 됐다는 점이다.


2007년은 이주성 전 국세청장의 대형 금품비리, 2013년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관된 태광실업 정치세무조사 의혹과 전직 국세청 고위직(전군표 전 국세청장,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들의 금품비리 사건이 터졌었다.


두고 두고 아쉬운 '2013년'


2013년 정성호 의원이 추진한 국세청법은 진일보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정 의원이 마련한 법안에는 국세청 정치중립 확보의 핵심인 국세청장 임기제 도입(2년 단임제)과 더불어 기획재정부 산하 국가세무위원회를 설치해 국세청 1급 고위직 중 국세청장을 추천하는 '국세청장 내부승진제' 명문화, 사무차장과 과세차장을 따로 두는 '복수차장제' 도입과 납세자보호관을 1급 별정직으로 승격시키는 내용도 추가됐다.


국세공무원을 특정직 공무원으로 전환하는 내용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정 의원의 입법안은 2013년 정기국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여당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에 조정식 민주당 의원이 이듬해 내용을 보완한 또 다른 국세청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의 내용 대부분은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유사하지만 국세청장 임기를 2년 보장하되, 국세청장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경우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달랐다.


또한 국세청장 후보는 내부인사 뿐 아니라 외부인사도 가능하도록 해 여당이 반대했던 내부승진 명문화를 사실상 배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014년 2월 임시국회에서 정 의원의 법안과 조 의원의 법안을 병합심사하기로 했지만 당시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SNS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선후보(2012년)를 '종북·빨갱이'로 비난한 사실이 밝혀지며 기재위는 장기간 파행을 거듭, 결국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지 못하고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조세일보 / 이희정, 류성철 기자 hjlee@joseilbo.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