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은 “지난 40년간 제과업계는 계속 어려웠다. 그래도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1972년 자신이 직접 개발해 스테디셀러가 된 죠리퐁을 들고, ‘과자산업은 재미와 행복을 줘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은 “지난 40년간 제과업계는 계속 어려웠다. 그래도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1972년 자신이 직접 개발해 스테디셀러가 된 죠리퐁을 들고, ‘과자산업은 재미와 행복을 줘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오는 8월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눈축제가 열린다. 300명이 한날한시에 눈뭉치를 깎는 퍼포먼스. 이렇게 탄생한 ‘눈떼조각’은 사흘간 전시된다. 한여름 아스팔트 위의 눈축제란 엉뚱한 이벤트를 기획한 사람은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72)이다. 직원들이 조각가로 나선다. 그룹 창립 70년을 기념하는 이 이벤트를 기획한 윤 회장을 서울 남영동 크라운해태제과 본사에서 만났다.

윤 회장은 “과자산업의 본질은 놀이이고, 과자를 만든다는 건 꿈과 행복을 파는 일”이라고 했다. 직원 모두 예술적 상상력과 철학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해야 한다는 얘기다. 눈축제를 기획한 이유라고 했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예술과 놀이는 기술이 있을 때만 빛을 발한다고 그는 말했다. 크라운해태제과의 핵심 경쟁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술’이라고 했다. 그의 삶도 예술가와 공학도 사이를 넘나들었다. ‘과자 공학도’라는 표현이면 어울릴까.

▷한여름 눈꽃축제는 왜 기획했습니까.

“몇 년 전 강원 태백에 갔을 때예요. 현장 점검을 갔는데 눈사태가 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사원이 할 일이 뭐 있겠어요. 그래서 ‘너흰 이제 눈 오면 과자 팔지 마. 가게 찾아다니며 눈이나 쓸어’라고 했어요. 그런데 눈만 쓸었더니 재미가 없어보여서, ‘뭐 좀 재밌게 해봐, 조각을 하든지 눈사람이라도 만들든지’라고 했죠. 점주들이 좋아서 난리가 났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게 뭐야’ 하고 쳐다보면서 자연스럽게 가게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때부터 회사 직원 모두가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고, 작년에만 1000개의 눈떼조각을 했습니다. 올해는 창립 70년을 맞아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겨울에 눈 보는 것보다 여름에 눈 보는 게 훨씬 재밌고 신기하잖아요.”

▷과자회사 다니면서 직원들이 국악에 조각까지, 예술학교 같습니다.

“과자를 팔아야 하는데, 과자 들고 설쳐봐야 헛수고입니다. 과자가 뭔가요. ‘행복’입니다. 없다고 못 살고, 못 먹으면 죽는 게 아니잖습니까. 과자를 산다는 건 꿈과 행복을 산다는 겁니다. 팔 사람, 살 사람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게 제 철학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내놔도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가게 주인들이 우리 것을 좋게 보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죠. 영업사원이 바닷가, 산골 오지까지 찾아가 우리 제품을 파는 점주들을 일일이 만나는 루트 세일을 시작한 계기입니다.”

▷직원들이 힘들어하진 않습니까.

[월요인터뷰] 윤영달 회장 "재미와 예술이 기술을 만나 행복을 주는 게 과자산업의 본질"
“항상 직원들에게 여덟 시간 근무하면 그중 절반인 네 시간은 자기계발에 쓰라고 합니다. 그게 붓글씨, 국악, 조각, 음악, 운동 등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과자산업에 필요한 예술적 감각을 기르도록 하는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또 퇴직 후에 무언가 남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것, 예술을 익히는 건 남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내 것’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젊을 때 직접 공장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길에 있는 어떤 기계든 다 주워다 일일이 분해하는 게 취미였어요. 그것 때문에 아버지에게 혼도 많이 났죠. 세 살 때는 장롱에 붙어 있는 경첩 나사를 다 풀어서 온 집안을 어질러놓은 적도 있어요. 사고도 많이 쳤어요. 죠리퐁 만든다고 혼자 씨름하다가 묵동 공장을 다 태워먹기도 했습니다. 그때 상장을 위해 주식 공모 중이었는데 공장이 다 타버리니 난리도 아니었죠. 1980년대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할 때도 그랬습니다. 기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 자동차 부품을 제조해 대박이 나기도 했습니다. 기술에 대한 집착은 본능 비슷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직접 기계 설계도 했습니까.

“죠리퐁 기계는 직접 제작하다시피 했죠. 네덜란드산 낡은 와플 기계를 들여와 개조해 생산한 제품이 버터와플입니다. 본능이라고 말한 건 그만큼 뭔가를 보면 참지 못하고 깊숙이 원리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는 풍차에 꽂혀 풍력발전 전문서적을 번역해 출간한 적도 있어요.”

▷해태를 인수할 때 무모하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2005년에 크라운은 4위였습니다. 2위 해태를 인수하겠다니 다들 미쳤다고 했죠. 몸집이 두 배가 넘었으니까요. 승부사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는 죽기 살기였어요. 제과업계가 다 어려웠으니까요. 1, 2등은 결국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3등도 아니라 4등짜리가 살 방법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절박했는지 사건도 하나 있었습니다. 인수 계약을 하는 날 저는 직원 100여명을 데리고 대만 위산(玉山)으로 떠났어요. 이사 한 명을 보냈더니 채권단이 인수할 생각이 있느냐며 다른 날 계약하자고 하더라고요.”

▷중요한 날 등산을 갔다는 말씀인가요.

“상징적인 거였죠. 이 산을 못 오르면, 해태를 인수한다고 해도 우리가 잘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같이 간 임직원들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4000m 산을 오른다는 건 우리가 몸집 두 배짜리 회사를 인수하는 것과 닮아있었지요. 이걸 못 오르면 위기도 못 넘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997년 크라운제과가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부터 골프채를 놓고 등산을 시작했어요. 하루에 세 개의 봉우리를 오르는 ‘삼봉’을 해야 성에 찼지요. 직원들하고 1년에 네 번은 사봉을, 평소엔 삼봉을 같이 하면서 위기를 이겨나가는 힘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준비해서 오른 게 위산이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해태를 인수한 게 아니라, 그렇게 오랜 시간 단련된 근력과 끈기로 해냈던 겁니다.”

▷올해 창립 70년, 지주사 전환도 마쳤습니다.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까.

“예술에 가까운 과자를 내놓으려고 합니다. 먹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작품 같은 과자지요. 직원들이 창을 배우고, 눈떼조각을 하는 것들이 이런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오예스 위에는 마치 잭슨 폴록의 작품에서 본 것 같은 비정형적인 무늬가 새겨질 거고요. 최근 고향만두를 물과 기름 없이도 일본식 교자 ‘눈꽃 만두’가 되도록 만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발상의 전환과 상상력, 기술력이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과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과자를 주로 소비하는 아이들이 적어지니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지난 40여년을 돌아보면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먹거리의 근본이 바뀐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에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해주십시오.

“큰 조직은 큰 조직대로, 작은 조직은 작은 조직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창업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우선 월급 받아가며 창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큰 기업의 역할이죠. 우리도 그렇게 할 겁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입니다. 창업은 칼싸움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도든, 단도든, 꼬챙이든 자기한테 가장 자신 있는 무기를 들고 싸워야 승부가 되지 않습니까.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선택 후 집중’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업이 아니더라도 젊은이들은 자신의 무기를 만들어 사회로 나와야 합니다. 공부하라고 하고 싶어요.”

▷훌륭한 인재상이 있습니까.

“제가 오랜 시간 연구한 ‘구궁인재론(九宮人財論)’이 있습니다. 수(修) 학(學) 사(思) 열(熱) 충(忠) 신(信) 구(究) 조(造) 수(首) 아홉 개를 직원들이 갖췄으면 하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구궁인재론 아래 락(樂) 화(和) 인(忍)을 갑골문자로 형상화해 썼습니다. 즐겁게 신이 나서 쓰러져있는 락(樂), 산에 조화롭게 서로 어우러지는 화(和), 산에 올라가는 고통을 형상화한 인(忍)입니다. 뭘 하든 이런 순서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통을 참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죠. 다른 사람과 어울려 화합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일을 그르칩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남과 화합하면 결국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뜻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의 경영 철학이지요.”

■ 윤영달 회장은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은 크라운제과 창업자인 고(故) 윤태현 회장의 장남이다. 1969년부터 크라운제과 경영에 참여했다. 1995년 크라운제과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를 맞았으나 일본 대만 등 다른 나라 제과업체들과 상대 회사 제품을 팔아주는 ‘크로스 마케팅’으로 극복했다. 2005년에는 크라운제과보다 덩치가 두 배 큰 해태제과를 인수했다.

윤 회장은 제과업계 최초로 영업사원이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전국 소매점을 직접 찾아다니며 물건을 공급하는 유통 방식을 도입했다. 지금은 제과업계 전체가 이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윤 회장은 국악 후원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발명가 기질도 있다. 1972년 시리얼을 벤치마킹한 죠리퐁을 직접 개발했다. 1997년엔 버터와플 생산라인을 직접 설계했다. 지금은 회장으로서 직접적인 경영보다는 각종 전시회와 국악, 조각 등을 아우르는 ‘아트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 등산대회, 모닝아카데미, 독서회 등을 꾸리며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오너로도 알려져 있다.

△1945년 서울 출생
△1968년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1971년 크라운제과 이사
△1973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5년 크라운제과 대표이사
△1996년 크라운베이커리 대표이사
△2005년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2011년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
△2013년 한국메세나대회 문화공헌상 수상
△2016년 서울시 문화상, KBS 국악대상 특별공로상 수상

김보라/김용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