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후 통화 실질가치 韓·中↑ 獨·日↓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한국 같은 대미 무역흑자국을 겨냥해 환율조작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한국 원화의 실질가치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오히려 뛴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한국 원화의 실질가치 상승률은 주요 27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의 공세 때문에 우리 외환당국의 손발이 묶인 영향으로 보는 분석도 나온다.

다음달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독일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을 만나 우리 당국의 일방적인 시장개입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19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한국 원화의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주요 27개국 대비 실질실효환율지수(2010년 100 기준)는 122.34로 작년 말(118.53)에 비해 3.2% 상승해 절상률 1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말 기준 지수는 2015년 5월(123.88)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올들어 27개국 중 14개국은 실질통화가치가 절상됐고 13개국은 절하됐다.

한국에 이어 호주 통화의 실질가치가 2.6% 올라 2위를 차지했고 스웨덴(2.3%), 멕시코(2.2%), 캐나다(2.0%) 등이 뒤를 이었다.

실질실효환율지수가 상승하면 해당국 통화의 교역상대국 통화 대비 실질가치는 절상됐다는 의미다.

실질실효환율은 물가변동까지 반영된 교역상대국에 대한 각국 돈의 실질적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로, 각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파악해 수출여건을 가늠하는 지렛대다.

100보다 높으면 기준연도보다 화폐 가치가 고평가됐고, 낮으면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비교 대상을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국을 모두 포함해 전 세계 61개국 기준으로 확대하면 지난 2월말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지수는 114.02로 작년 말(110.63)에 비해 3.0% 상승해 절상률이 7위 수준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2월(118.75) 이후 9년 만에 최고다.

올들어 61개국 중 30개국은 실질통화가치가 절상됐고, 1개국은 그대로였으며, 30개국은 내렸다.

한국보다 절상률이 높았던 국가는 베네수엘라(8.1%), 브라질(6.1%), 남아프리카공화국(5.3%), 러시아(5.2%), 콜롬비아(4.0%), 폴란드(3.2%) 등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무역흑자가 많아 대표적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한 중국이나 독일은 올들어 실질통화가치가 각각 0.6%와 0.8% 절하됐다.

반면에, 역시 환율조작국으로 지목된 일본은 올들어 실질통화가치가 1.0% 상승했다.

비교기간을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로 확대해봐도 한국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지수는 작년 10월 말에서 지난달 말까지 1.9% 절상됐다.

같은 기간 중국 위안화의 실질가치도 1.0% 상승했다.

반면에, 독일은 0.9%, 일본은 7.8%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실질통화가치가 가장 많이 떨어진 국가는 터키(-10.1%), 일본(-7.8%), 멕시코(-3.3%), 유로존(-2.7%), 그리스(-2.5%), 아일랜드(-2.5%), 말레이시아(-2.4%) 순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캠페인 당시부터 중국이 수출할 때 미국보다 유리하게끔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형태로 조작하고 있다며 대통령에 취임하는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표해왔다.

그는 취임 이후인 1월 3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며 "이들 국가는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다음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유로화 절하를 문제 삼으며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큰 폭으로 절하해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타깃은 대미무역흑자가 많은 국가들이다.

국가별로 보면 지난해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에 가장 큰 원인이 된 무역상대국은 무려 3천470억 달러를 차지한 중국으로 전체의 46.2%를 차지한다.

이어 일본(689억 달러), 독일(649억 달러), 멕시코(632억 달러), 아일랜드(359억 달러), 베트남(320억 달러), 이탈리아(285억 달러), 한국(277억달러), 말레이시아(248억 달러), 인도(243억 달러) 순이었다.

이들 국가는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이어서 기존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요건 3가지 중 1가지를 충족한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통해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이고, 경상수지 흑자가 해당국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이면서,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한 방향으로 외환시장 개입을 반복적으로 단행하는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재무부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 중국, 일본, 독일, 대만, 스위스 등 6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는 환율조작국 지정의 전 단계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17∼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해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잇따라 만나 다음 달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유 부총리는 므누신 장관에게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당국의 일방적인 개입은 없다"면서 최근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인구구조 변화, 저유가 등 구조적·경기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환율의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라가르드 총재에게는 회원국의 환율·경상수지 평가 결과가 미국의 환율보고서 작성시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에 평가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한국 원화의 올해 들어 실질가치 절상률은 G20 국가 중에서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았다.

올들어 통화의 실질가치 절상률이 한국보다 높았던 국가는 브라질(6.1%), 남아공(5.3%), 러시아(5.2%)뿐이었다.

통화의 실질가치 절하율이 높았던 국가는 터키(-2.9%), 몰타(-2.0%), 사우디아라비아(-2.0%), 미국(-1.7%), 영국(-1.6%) 순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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