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반기업 정서 보고서] 표 노린 정치권이 '반기업' 조장…국민 50% "기업이익 사회환원해야"
한국경제TV가 전국 성인 1039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반(反)기업 정서’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기업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공무원의 60% 이상은 사회환원이 기업의 이윤 활용처라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격변기에 정치권에서 여론을 끌어들이기 위해 반기업 정서를 집중 활용해왔다”며 “기업을 때려서 정권을 잡으려는 정치가 한국 사회의 반기업 정서를 뿌리 깊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무원 60% “이윤 사회 환원”

한국경제TV는 이번 여론조사에서 반기업 정서를 확인하기 위해 과거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가 쓴 질문과 답변 항목을 그대로 활용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을 묻는 항목에서 가장 많은 답변은 일자리 창출(32.8%)이었다. 국가경쟁력 강화(24.0%)와 사회환원(22.7%)이 그 뒤를 이었다. 경제학 교과서의 정답인 이윤 창출이라는 답변은 20.5%로 가장 적었다.

‘기업의 이윤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응답자의 50.2%는 사회환원을 꼽았다. 직원에게 이윤이 가야 한다는 답은 35.6%에 달한 반면 주주는 9.5%에 그쳤다. 기업이 지속적 이윤 창출을 통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성되고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는 합리적 인식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무원들의 인식은 더 왜곡돼 있었다. 기업에 대한 인식을 묻는 말에 공무원은 50.3%가 ‘부정적’이라고 답해 전체의 ‘부정적’ 답변(55.1%)보다 낮았다. 그러나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윤 창출(21.2%)보다 국가경쟁력 강화(22.1%)와 사회환원(27.7%)이란 답이 더 많았다. 기업 이윤의 활용처로는 60.5%가 사회환원을 꼽았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공무원이 기업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같은 규제라도 더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라며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기업에 대한 반감은 더 높았다. 대학생 대상 기업 인식 질문에서 ‘나쁨’이 56.2%, ‘매우 나쁨’이 30.1%로 86.3%에 달했다.

◆격변기마다 기업 때리기

이번 조사에서 반기업 정서를 드러낸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기업의 윤리경영 미흡을 꼽았다. 기업에 반감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절반(50.7%)가량이 윤리경영 미흡 때문에 반기업 정서가 생겼다고 답했다. 투자·고용창출 미흡(21.8%), 사회공헌 소홀(20.4%), 창의·혁신 부족(3.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최근 ‘최순실 사태’로 다시 도마에 오른 정경유착과 반복되는 재벌 3, 4세들의 비도덕적 행태 등이 표면적으론 반기업 정서의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확산된 반기업 정서 뿌리엔 격변기마다 반복돼온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1960년대 군사정권은 ‘기업인=부정축재자’ 논리로 기업을 단죄하면서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하던 정부에 대한 국민 불만을 돌리려 했다. 1970년대 유신정권은 ‘반사회적 기업인 명단’을 통해 기업을 옥죄었고 1980년대 신군부도 국제그룹 해체 등으로 기업을 길들였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는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으로 대기업을 줄 세웠고,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대기업을 지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선거 때마다 경제민주화란 명분으로 기업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 설명이다. 이런 과정에서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국민의 뇌리에 각인됐다는 것이다.

황인학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정치인들이 표를 위해 선거 과정에서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며 “반기업 정서로 기업 활력이 줄어들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