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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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지멘스그룹은 2010년대 들어 변신을 거듭했다. 발전·에너지 등 제조업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혁신을 시도했다. 변신의 결과 조직은 가벼워졌다. 2011년 40만4000여명이던 지멘스그룹의 직원 수는 지난해 35만여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직원 수는 같은 기간 1700여명에서 2200여명으로 늘어났다. 2011년 취임한 김종갑 지멘스(주) 회장의 공격 경영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 취임한 뒤 지멘스(주)의 사업 영역은 아시아를 넘어 북아프리카 지역으로까지 넓어졌다. 김 회장은 “빠른 성장 속도와 협업 정신을 지닌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며 “독일의 정직성과 철저함을 갖춘 세계 최고의 에너지 솔루션 회사를 한국에 만들겠다”고 말했다.

차관에서 민간기업 CEO로 변신

[비즈&라이프] 김종갑  지멘스(주) 회장 "한국에 세계 최고 에너지 솔루션 회사 만들 것"
김 회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행정고시(17회) 출신으로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까지 지냈다. 공직에서 물러나자마자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 전신)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고위공직자가 퇴임 후 곧바로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기는 일은 지금도 흔하지 않다.

당시 적자 늪에 빠져 있던 하이닉스반도체의 회생 발판을 마련한 그는 2011년 독일계 기업인 지멘스(주) 대표이사 회장으로 옮겼다. 여기선 ‘최초’의 타이틀이 붙는다. 지멘스 한국 지사 65년 역사상 한국인 CEO는 그가 처음이다. 김 회장은 “소위 갑(甲·정부 관료)에서 을(乙·하이닉스반도체 사장)과 병(丙·지멘스 회장)을 모두 거쳤다”며 “그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넘어 세계를 상대로 영역을 넓히는 신분 상승을 해온 셈”이라고 말했다.

화려하기만 해 보이는 그의 삶은 굴곡도 없지 않았다. 1951년생인 김 회장은 6·25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사진 속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으나 형과 누이 등 세 명이 전쟁통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북 안동은 자신을 보살펴준 고향이지만, 벗어나고픈 울타리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수많은 문중 어른의 함자와 묏자리 위치까지 줄줄 외워야 하는 생활에서 탈출하는 게 첫 번째 꿈”이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안동중학교를 졸업한 뒤 은행원을 꿈꾸며 대구상고로 진학했다. 그러나 목표를 바꿔 대학(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한 뒤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시험공부 6개월 만에 1차에 붙고 이듬해 방위병으로 위병 생활을 하면서 하루는 밤샘 근무, 다음날 쉴 때는 공부에 매진한 끝에 그해 행시에 최종 합격했다.

하이닉스 회생 발판 마련

김 회장은 공무원 시절 승승장구했다. 산자부에서 행시 동기 가운데 가장 빨리 국장에 올랐고, 특허청장, 제1차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엔 늘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산자부 재직 시절 1000여개 기업을 방문하면서 느낀 ‘현장에 대한 갈증’이었다. 이제까지 후방에서 기업들을 지원했다면,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는 야전에서 한번 부딪쳐 보고 싶은 ‘투지’가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차관 퇴임 후 매력적인 공기업 사장 자리를 제의받았지만 사양하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직 공모에 뛰어들었다. 13 대 1의 경쟁률이었다. 엄격한 검증을 통과한 그는 사장 취임 이후 사상 최악의 반도체 불황과 싸워야 했다. 사장 취임 이듬해인 2008년 하이닉스는 4조7000억원가량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백척간두의 위기 앞에 섰지만, 주인 없는 회사에는 청탁만 넘쳐났다.

김 회장은 하이닉스 사장 초기 자신이 기록한 청탁 메모만 70건이 넘는다고 했다. 그중 한 건도 밑으로 내려보내지 않았고, 사소한 인사청탁도 들어주지 않았다. 김 회장은 “기업을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라며 “인사의 공정성 없이는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찾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경기 이천 반도체 공장의 공정을 변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환경 문제도 무난하게 해결했다. 공장 설립과 관련한 모든 의사결정에 환경단체 인사들을 참여시키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는 “16개월의 긴 설득 기간이 필요했지만 회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이해관계자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넘는 지사로 거듭나야

김 회장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외국계 기업 CEO 역할이 정부부처 장·차관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정부부처 관료들이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뛰듯이 김 회장도 지멘스가 진출한 세계 204개국에서 어떻게 하면 일감을 많이 따올까 궁리한다는 설명이다.

그가 회장으로 재임한 5년7개월 동안 지멘스 한국 지사의 위상은 날로 높아졌다. 김 회장은 2013년 발전소를 일괄수주방식으로 건설하는 지멘스에너지솔루션스를 시작으로 3개 사업 부문의 아시아본부를 한국에 유치했다. 조 케저 지멘스그룹 회장은 2014년부터 매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지멘스가 2015년 한국 국내총생산(GDP) 창출에 0.2% 기여했다고 추정했다. 김 회장은 “외국계 기업 지사라고 해서 한국 안으로 사업 영역을 한정하면 안 된다”며 “올초 회사의 대외명칭을 한국지멘스에서 지멘스(주)로 바꾼 이유도 세계 곳곳에서 사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할 저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에선 독일,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기업에 비해 다소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은 정보통신 강국, 인터넷 강국으로 과대포장돼 있지만 사람인터넷 강국일 뿐 사물인터넷은 초보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은 탁월한 제조기반과 역량을 갖추고 있어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면 된다”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해 지원 관리하는 정부 체계와 새로운 사업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규제를 개혁하면 국내 기업의 4차 산업혁명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올해 한국에서 디지털 사업 분야를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기 안산 반월·시화 산업단지에 시범 스마트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김 회장은 “가상세계에서 디자인해 시뮬레이션한 제품을 공장에서 현실화하는 미래형 스마트 공장의 표준으로 건설하고 있다”며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제조업 경쟁력에 기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갑 회장 프로필

△1951년 경북 안동 출생 △1969년 대구상고 졸업 △1974년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1975년 행정고시 17회 합격 △1983년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3년 인디애나대 경제학 박사 수료 △1997년 통상산업부 통상협력국장 △1999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2003년 산자부 차관보 △2004년 특허청장 △2006년 산자부 제1차관 △2006년 성균관대 행정학 박사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 △2011년~지멘스㈜ 대표이사 회장 △2016년~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