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게임회사가 자체 인공지능(AI) 연구소를 운영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구글의 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지난 3월 이세돌 9단을 꺾으며 국내외 관련 업계에 강력한 충격파를 던졌지만 엔씨소프트는 이미 5년 전인 2011년 AI랩을 신설해 관련 연구를 착실히 해왔다. 석·박사급 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해온 AI랩은 지난해 말 AI센터로 격상됐다. AI 연구를 포함해 엔씨소프트가 지난 3분기까지 연구개발(R&D)에 쓴 돈만 1322억원으로 누적 매출(5103억원)의 25.9%에 달한다.

“알파고보다 먼저 상용화”

AI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재준 상무(사진)는 2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엔씨소프트의 AI 기술력은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이고 글로벌 게임회사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며 “알파고의 핵심 기술인 딥러닝과 강화학습 솔루션이 이미 올해 1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블레이드앤소울 내 신규 콘텐츠로 선보인 무한의 탑에 사용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무한의 탑은 플레이어와 AI가 1 대 1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다. 총 100층인 탑을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더 강력한 적수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 상무는 “기존 컴퓨터 프로그램은 정해진 공략법이 있고 이것만 깨면 항상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지루해지기 마련”이라며 “AI는 현재 상황, 즉 자신과 상대의 체력, 남은 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플레이어를 공격하기 때문에 여러 번 승부해도 그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알파고가 알고리즘 강화를 위해 바둑 기보 16만개를 학습한 것처럼 무한의 탑 AI도 10만번 이상의 반복 훈련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무는 “게임 규칙이 비교적 간단한 바둑에 비해 MMORPG 전투가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아직 AI가 프로게이머를 이길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면서도 “단순히 사람을 넘어서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아슬아슬하게 져줄 수 있는 영리한 AI를 개발하는 게 진정한 목표”라고 했다.

재밌게 져주는 AI가 목표

이 상무는 게임 AI뿐 아니라 자연어 처리나 이미지 인식 등 일반 AI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자연어 처리는 지식이나 데이터 축적을 위한 핵심 도구”라며 “게임 내에 이 같은 기술이 도입된다면 플레이어를 위한 각종 편의 기능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 채 “내년 중 윤곽이 조금씩 드러날 것”이라고만 했다.

이 상무는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지도교수가 국내 1호 인공지능 박사로 잘 알려진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이다. 이후 인지소프트 SK텔레콤 등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서 일하다 2011년 엔씨소프트 AI랩실장으로 영입됐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