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화케미칼은 염소화폴리염화비닐(CPVC)의 공정기술 개발에 4년을 매달렸다. 선발 업체에서 기술을 도입하는 대신 독자 개발하는 과정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CPVC는 염소와 PVC를 섞어 만드는데 두 가지를 어떤 비율로 섞어야 할지, 어떤 화학반응기를 써야 할지 알아내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했다. 프로젝트 리더로 기술 개발을 이끈 진선정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사진)은 “기술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1000번도 넘게 테스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신성동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에서 진 수석연구원을 만났다.

▷CPVC를 쉽게 설명하면.

“CPVC는 PVC보다 염소 비율이 10%가량 더 높다. 그래서 PVC보다 열과 압력에 강하다. 일반 PVC는 최대 사용온도가 60도다. 60도 이상의 물이 PVC 관을 지나면 버티지 못한다. 이에 비해 CPVC는 93도의 물이 지나도 된다. CPVC는 868도에서 태웠을 때도 30분 정도 타지 않는다. 화재 현장에서도 오래 버틸 수 있다. 가격도 PVC는 t당 110만원 정도지만 CPVC는 t당 210만원으로 훨씬 비싸다.”

▷주로 어디에 쓰이나.

“열에 강하기 때문에 국내에선 80%가 소방용 스프링클러 배관으로 쓰인다. 현재 전량 수입하는데 수입량은 연간 1만1000t가량으로 230억원 규모다. 국내 스프링클러 시장에선 CPVC와 아연도강관이 경쟁하는데 CPVC는 아연도강관보다 가볍고 시공이 편하다. 아연도강관은 40년 정도 흐르면 녹슬지만 CPVC는 그럴 염려가 없다. 세계 시장 규모는 6300억원이고 매년 10% 안팎 성장하고 있다. 해외에선 온수용 배관이나 산업용 배관으로 더 많이 쓰인다. 그만큼 시장이 풍부하다.”

▷왜 CPVC에 관심을 갖게 됐나.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고 봤다. 또 한화케미칼은 염소와 PVC를 모두 생산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합치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 수 있으니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한화케미칼은 1967년 국내 최초로 PVC 생산을 시작해 PVC 관련 경험이 풍부하다.”

▷세계 시장에선 누가 강자인가.

“최고 강자는 미국 루브리졸이다. 설비 기준으로 연간 14만5000t을 생산할 수 있다. 이어 일본 가네카(7만5000t)와 세키스이(5만5000t), 프랑스 켐원(9000t) 순이다. 한화는 울산에 연산 3만t짜리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3월부터 상업가동하는 게 목표다. 울산공장이 돌아가면 한화는 세계 4위 CPVC업체가 된다.”

▷해외에서 기술을 도입할 생각은 안 해 봤나.

“왜 안 했겠나. 2011년 해외 업체 네 곳에 기술 전수 의사를 타진해 봤다. 세 곳이 거부했다. 당시 CPVC 영업이익률이 30%를 넘기도 했으니 굳이 우리한테 기술을 줄 이유가 없었다. 그나마 켐원이 기술 전수 의사가 있다고 알려왔지만 그쪽에서 내건 조건이 너무 까다로웠다. 연간 4000t짜리 CPVC 생산공장을 짓는 데 기술료로 700만유로(약 107억원)를 달라고 하더라. 생산량을 늘리려면 그때마다 기술료를 더 내는 조건이었다. 이래선 수지타산이 안 맞겠다고 판단해 2012년 독자 개발에 착수했다.”(한화케미칼이 4년간 CPVC 개발에 쓴 연구비는 26억원 정도다. 기술 도입보다 독자 개발이 훨씬 이익이 된 셈이다)

▷왜 처음부터 독자 개발을 시도하지 않았나.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독자 기술 개발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뭔가.

“해외 업체들이 기술 관리(보안)를 잘해서 좀처럼 자료를 볼 수 없었다. CPVC를 만들려면 PVC에 염소를 붙여야 하는데 염소가 잘 안 붙었다. 염소를 얼마나 집어넣어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집어넣어야 할지, 적절한 반응 조건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또 CPVC를 만드는 데는 염소, 염산, 수산화나트륨, 소금 등 4대 부식성 물질이 들어가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되면 공장이 녹아버린다. 실험 도중 화학반응기가 두 시간 만에 녹아 버린 적도 있다. 반응기 하나가 1억원짜리인데 말이다.”

▷성공하기까지 실패를 많이 했을 것 같다.

“그걸 실패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성공하기까지 1000번도 넘게 테스트를 했을 것이다.”

▷기술 개발에 성공했을 때 소감이 어땠나.

“1992년 입사했는데 25년간 PVC 관련 연구개발을 하면서 내 기술을 가져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위에서 모두 ‘운이 좋다’고 한다. 연구원이 자기 기술을 갖게 됐다는 게 굉장한 행운이란 얘기다.”

▷지금은 좀 홀가분할 것 같다.

“아니다. 아직 긴장을 풀 순 없다. 나중에 공장을 가동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이에 대비해서 트러블 슈팅(문제 해결) 연구를 하고 있다. 미래에 생길 문제를 미리 상정해 그걸 어떻게 풀지 해결하는 연구다. 이걸 해둬야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대처할 수 있다.”

▷독자 기술 개발이 왜 중요한가.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우리 기술이 있어야 절대 유리하다. 해외에서 합작을 하려면 ‘독자기술이 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CPVC 기술을 독자 개발하니까 아직 공장 가동도 안 했는데 벌써 ‘같이하자’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다른 기술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한화케미칼은 CPVC 기술을 기존 PVC 생산공장에 적용해 범용 제품인 PVC의 품질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 닝보의 한화케미칼 PVC 공장에서다)

▷공장 가동은 언제부터 하나.

“내년 3월 예정이다. 연매출 720억원, 영업이익률 20%가량이 목표다.”

▷판로 개척은 어느 정도 됐나.

“회사에 매우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프로젝트팀이 10명인데 처음부터 여기에 본사 시장조사팀과 공장 설계 전문가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우리가 개발한 기술에 최적화된 공장을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장 조사도 함께할 수 있었다. 세계 시장이 29만t 정도인데 이 중 인도와 중동이 연간 15만~16만t가량이다. 우선 인도 시장에서 프리 마케팅을 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 진출하려면 우선 소방 인증을 받아야 해 지난 5월부터 이 작업을 하고 있다.”

▷시장 전망과 대응 계획은 뭔가.

“2020년이면 세계적으로 수요가 40만t 정도로 늘어나는 데 비해 공급은 30만t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그에 맞춰 회사에선 2020년까지 연산 3만t짜리 공장을 또 짓는 걸 생각하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