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판도라'(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특별시민’, ‘택시운전사’, ‘마스터’ 포스터
‘판도라'(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특별시민’, ‘택시운전사’, ‘마스터’ 포스터
7일 개봉한 영화 ‘판도라’(박정우)는 원전 문제를 다룬다. 원전이 폭발한다. 정부의 모습은 흔히 봐왔던 모습이다. 사건을 최대한 덮고, 언론을 통제한다.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자연 재해는 ‘인재’(人災)가 된다. 희생은 결국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판도라’는 시작이었다. 세태를 꼬집고,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떠다놓은 영화들이 속속들이 개봉한다.

4년 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될 텐데’라는 상상으로 출발한 ‘판도라’는 4년 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재난영화로 주목을 받고 있다.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 폭발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재난 앞에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담는다. 지난 9월 경주 지진을 겪으면서 ‘판도라’는 현실성을 갖게 됐다. 여기에 재난 상황 후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인해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본의 아니게 현실과 너무 닮아버려서 제작진은 오히려 이를 경계했다. 극중 김남길이 외친 ‘이게 어디 나랍니까’라는 대사는 편집이 되기도 했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마스터’(조의석)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지능범죄수사대와 사기범, 그리고 그의 브레인까지, 그들의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진현필 회장은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의 초성을 따온 인물이다. 조희팔의 악명은 유명하다. 그는 의료기기 렌탈 사기로 약 3만여 명으로부터 5조원 이상의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망쳤다. 이후 중국에서 조희팔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검찰은 조희팔의 사건 수사를 종결했다. ‘마스터’에서도 진회장은 조희팔의 행적을 떠올리게 하는 궤도를 걷는다. 그러나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은 그의 뒤를 끝까지 쫓는다. 현실과 다른 영화가 주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조의석 감독은 “역사가 반복되면서 기억에 남는 인물을 진회장 캐릭터에 녹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엘시티 사건’을 연상시키는 지점도 있다. 진회장은 자신과 결탁한 권력들을 자신의 장부에 모두 남겼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측은 해운대에 들어서는 엘시티 건설의 비리를 추적하며 이영복 회장의 ‘비밀장부’를 수면 위로 올려 놓으며 화제를 모았다.

예고편만으로도 큰 화제를 산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도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더 킹’ 측이 공개한 예고편 말미에는 주연배우들이 나란히 서서 굿판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는 무당 앞에서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박수를 치는 정우성의 모습은 백미다. 이는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연관되며 이슈몰이를 했다. ‘더 킹’은 무소불위 권력을 꿈꾸는 검사 태수(조인성)가 대한민국의 실세인 차세대 검사장 후보 한강식(정우식)을 만나면서 겪는 일을 그린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한국사회의 부조리함을 담아낼 예정이다.

‘더 킹’을 시작으로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택한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를 비롯해 1급 군사기밀에 얽힌 국 내부 비리 사건을 파헤치는 ‘일급비밀’(감독 故 홍기선), 국방 비리를 다룬 ‘제5열’(감독 원신연), 대한민국 최초로 3선 시장에 도전하는 서울시장 변종구가 권력을 쥐기 위해 온갖 탈법과 암투를 벌이며 추악함을 보여줄 ‘특별시민’(감독 박인제), 1987년 6월 항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보통사람’(감독 김봉한)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들이 대중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세태를 꼬집는 영화들은 개봉부터 쉽지 않은 과정을 겪는다. ‘판도라’는 정부의 벤처투자금인 모태펀드가 명확한 이유 없이 투자가 철회되면서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금을 유지했다. ‘일급비밀’, ‘보통사람’ 역시 모태펀드 투자에서 배제된 영화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와 현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더불어 정치권력, 비리, 부패, 정경유착 등은 영화에 큰 영감을 주는 소재이기에 현실과 닮은 영화들이 계속해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기와도 관련이 있다. ‘화려한 휴가’(2007), ‘범죄와의 전쟁’(2012), ‘부러진 화살’(2012),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26년’(2012) 등의 영화들은 정권 말에 공개돼 큰 호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큰 만큼 현실 비판적인 영화들이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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