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2017년부터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한 마디로 미국을 전기차의 주력 시장으로 바꾸겠다는 미래 전략이다. 방법은 공격적이다. 내년에 우선 300기의 충전기를 미국 내 15개 대도시에 설치하고, 200기의 초고속 충전 스테이션을 미국 전역에 설치한다. 이를 통해 테슬라를 단숨에 뒤로 밀어낸다는 의지다. 그런가 하면 르노-닛산은 차세대 EV 공용 플랫폼 개발을 선언했다. 르노의 조에(Zoe)와 닛산의 리프(Leaf) EV 플랫폼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외형은 달라도 공유에 따른 비용 절감을 통해 이제 본격적으로 EV 사업도 수익을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칼럼]'이익'은 내연기관, '투자'는 전기

이처럼 글로벌 완성차기업이 빠르게 EV 시대를 준비하는 이유는 당연히 규제 강화 때문이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는 현재 50%에 달하는 유럽의 디젤차 판매 비중이 2025년 10%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제조사 스스로가 디젤차 판매를 줄일 수밖에 없어서다.

그리고 대안으로 삼은 것은 전기차다. 그러나 여기저기 등장하는 순수 100% 전기차는 아직 주력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신 소형 가솔린 엔진과 대형 배터리가 결합된 가솔린 하이브리드가 유럽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1년에는 하이브리드가 디젤차 판매를 추월하고, 2025년이면 전체 자동차 판매의 25% 비중을 하이브리드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이런 예측은 그간 꾸준히 제시돼 왔다. 이른바 '추진체(Propulsion)'로 불리는 동력활용장치로서 내연기관은 배출가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배터리를 부착한 하이브리드 전기차(HEV)가 등장했다. 그런데 HEV는 기름 태우는 엔진에서 전기를 만드는 만큼 한계가 분명했다. 그래서 주차 때 외부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가 HEV의 다음 단계로 제시됐다. 필요 전기를 엔진에서 얻지 않아도 되니 그만큼 고효율이 가능했고, 출퇴근 거리가 일정하면 전력으로만 운행해도 충분했다. 또한 충전 인프라가 많지 않아도 어려움이 없는 장점도 꼽혔다. 하지만 일부 완성차회사는 HEV와 PHEV를 거치지 않고 내연기관에서 곧바로 순수 배터리 전기차(BEV)로 건너뛰었다. 어차피 순수 전기차로 도달할 것인데, HEV와 PHEV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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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에서 곧바로 BEV를 향한 곳은 엔진 판매로 수익성을 높이고, 이 돈으로 BEV에 투자하는 방식을 추진한다. 순수 전기차로 간다는 미래 예측을 전제로, 불필요하게 HEV와 PHEV에 투자해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형국이다. 르노-닛산 등이 좋은 예다.

반면 HEV, PHEV, BEV 등의 제품군을 모두 마련한 제조사는 단계별 수익과 투자가 안정적이라고 여긴다. 기름 엔진에서 돈을 많이 벌어 HEV에 투입하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PHEV, 이후 다시 BEV로 이동하는 점진적 시장 변화를 내다본다. 글로벌의 정치, 경제, 환경 등의 모든 변수를 고려할 때 미래는 전력이 부족할 수도 있는 만큼 어떤 에너지가 떠올라도 자동차 제조업은 지속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표적인 곳이 토요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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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궁극의 시장이 EV라도 중요한 제품 전략은 다시 둘로 쪼개진다. 배터리를 충전해서 구동하는 순수 배터리 EV와 수소 반응으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FCEV(수소전기차)'다. 단계별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토요타의 경우 BEV 뿐 아니라 FCEV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반면 르노-닛산과 폭스바겐그룹 등은 FCEV와 BEV의 경쟁에서 BEV가 우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전력 기반이면 배터리를 충전, 운행하는 것이 낫다는 점에서 굳이 FCEV에 대한 투자는 낭비로 여긴다. 그렇게 보면 토요타는 추진체의 단계별 변화에 따른 분산 투자, 르노-닛산 등은 '건너뛰기'라는 집중 투자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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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과 집중으로 선택이 나눠지는 배경은 원천적으로 기름에서 얻는 수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름 엔진 판매로 이익을 많이 내는 곳은 분산 투자 여력이 충분한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은 투자비가 적어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기름에서 돈 벌어 전기에 투자하는 것은 같지만 EV는 여전히 수익성이 떨어지니 말이다.

최근 일련의 행보를 보면 거대 자동차기업이 빠르게 EV로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수익의 대부분이 여전히 내연기관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EV 시대를 늦추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EV 시대로 전환되려면 수익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익을 포기할 수 없으니 말이다. 전통적 내연기관 기업마다 EV로 향하는 발걸음이 빠른 것 같지만 기대만큼 속도를 낼 수 없는 이유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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