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샤프를 인수한 대만 훙하이가 세계 TV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샤프의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을 디딤돌로 세계 TV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계 TV 시장은 연간 2억2000만대 수준에서 4~5년째 멈춰 있다. 정체된 TV 시장에 훙하이가 본격 뛰어들면 업체 간 경쟁이 격해지고, 패널 가격도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 삼성' 대만 훙하이, TV시장 출사표…삼성·LG에 전면전 선포
◆“내년부터 LCD패널 공급 중단”

14일 TV업계에 따르면 샤프는 지난달 삼성전자, LG전자에 내년부터 LCD 패널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8세대 라인 두 개와 10세대 라인 한 개를 보유한 샤프는 삼성전자에 연간 300만대가량, LG전자에 10만대 이하의 패널을 공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삼성전자 연간 TV 생산량(약 5000만대)의 6%, LG전자(약 3000만대) 생산량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샤프는 지난 몇 년간 삼성과 LG에 공급량을 늘려왔다. 자체 브랜드 TV 판매가 감소한 데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동 중인 10세대 라인에서 생산하는 60~80인치 등 초대형 패널을 소화할 수 있는 TV 메이커가 삼성, LG 외엔 많지 않아서다. 하지만 올초 훙하이에 인수된 뒤 훙하이 납품량을 늘리고, 삼성 LG 공급량을 줄였다.

업계는 샤프의 공급 중단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훙하이가 샤프 브랜드로 TV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패널 외부 공급을 끊었다는 시각이 많다. 훙하이는 그동안 자체 상표 없이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TV 완제품을 제작했다. 하지만 올초 샤프 브랜드를 확보하며 TV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샤프 TV는 2011년 세계 TV 시장의 6.4%(매출 기준)를 차지했으나 지난해 3.2%, 올 3분기 2.1%까지 떨어졌다. 김동원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 등에 대한 샤프의 패널 공급 중단은 샤프 브랜드를 통한 TV 시장 확대와 삼성전자 등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훙하이는 삼성과 관계가 좋지 않다. 궈타이밍 훙하이 회장은 2010년 계열사인 대만 치메이가 유럽연합(EU)에서 담합 혐의로 3억유로 과징금을 부과받을 때 삼성전자가 자진신고(리니언시) 제도로 빠지자 “경쟁자 등 뒤에 칼을 꽂는 소인배”라고 비난하며 삼성 타도가 평생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샤프 인수 때도 “일본 기업과 손잡고 3~5년 안에 삼성전자를 꺾겠다”고 했다. 훙하이는 최근 중국 광저우에 10.5세대 초대형 LCD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삼성, LG디스플레이에 패널 요청

샤프의 공급 중단 통보가 패널 공급 가격을 높이기 위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샤프는 LCD 라인에서 막대한 적자를 냈다. 훙하이에 매각된 원인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올초부터 LCD 패널 가격 강세가 이어지자 이번 기회에 패널 가격을 올리자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패널 가격이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40인치 이하 패널 값이 특히 많이 올랐다. 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라인 증설을 위해 최근 40인치대를 생산하던 7세대 LCD 공장 가동을 중단한 게 영향을 미쳤다. 40인치 패널(오픈셀, 풀HD, 120hz 기준) 가격은 지난 6월 97달러에서 지난달 145달러로 뛰어올랐다. 60인치는 같은 기간 245달러에서 268달러로 상승했다. 샤프가 10세대 라인에서도 60인치 이상 패널 대신 40인치 이하 패널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큰 영향은 없다는 판단이다. 샤프 공급량이 전체 필요 패널의 6% 수준에 불과해 다른 패널 업체에서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패널업계 전체로 보면 60인치 이상 패널은 내년에도 20%가량 공급과잉일 것으로 추산된다”며 “다른 업체에서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삼성디스플레이, 샤프, 대만 AUO, 중국 BOE 등에서 패널을 공급받았다. 삼성전자는 최근 LG디스플레이에 LCD 패널 공급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