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진 < 한국제안활동협회 회장(경기대 교수) >
[기고] "기업 사내제안제도 활성화 땐 새는 돈 줄이고, 직원 간 소통 활발"

“화장실 소변기 센서기에 비싼 3.9V 건전지를 쓰고 있습니다. 3.9V 건전지는 개당 1만9000원으로 1.5V 건전지 3개를 쓰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롯데마트 한 지점 사원이 사내제안시스템에 올린 내용이다. 이 지점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7년 전부터 소변기 센서에 소형 건전지를 사용한다. 회사는 연간 30만원 이상의 비용을 아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안정성도 검증돼 전 지점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사내 소통과 창조경영이 강조되면서 사내제안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사내제안제도는 한마디로 ‘직원의 입, 조직의 귀’다. 여전히 유명무실, 개점휴업인 곳이 많지만 적잖은 결실을 거두고 있는 기업도 많다.

농심은 1981년 선보였다가 10년 만에 단종된 ‘비29’를 2009년 재출시했다. 사연이 재미있다. 2007년 인터넷에 카레맛이 나는 비29 재생산을 바라는 카페가 개설됐다. 이를 본 농심 마케팅팀 직원이 사내제안시스템인 ‘무병장수농원’에 “비29를 다시 출시하자”고 제안했다. 농심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요구와 직원 제안을 바탕으로 시장을 분석해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 2009년 7월 이 제품을 재출시했다.

2008년 11월 LG생명과학 이모 대리는 사내제안 게시판인 ‘와우! 팩토리’에 글을 올렸다. “LG의학상을 제정해 의학계와 관계를 강화하자”는 것. 앞서 김모 과장은 “청년 의사 그룹과 함께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2009년 처음 수상자를 배출한 ‘LG생명과학 미래의학자상’이다.

사실 사내제안제도에 대해 국내 기업이 관심을 가진 것은 오래된 일이다. 한창 붐이 일던 사내제안제도는 1980년대 후반 바람이 멈췄다.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제안은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제도’라는 인식이 퍼졌다. 실제로 대기업 생산직 노조는 제안활동 거부운동을 벌였다.

2000년대 들어 기업이 다시 사내제안제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생산현장에서 품질분임조 형태로 이뤄지던 제안제도는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직원 누구나 쉽게 제안할 수 있는 환경, 거기에 지식과 창조 그리고 소통과 집단지성이 강조되면서 사내제안제도는 거의 모든 기업에 도입됐다. 국내 주요 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내제안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기업의 사내제안이 활발하다.

그러나 사내제안제도가 기업 전반에 정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제도를 오해하고 있는 기업도 많다. 사내제안제도의 핵심은 IT 시스템이 아니다. 인트라넷에 별도 제안 게시판을 구축하는 게 비싸서 못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사내제안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필요성에 대해서도 쉽게 공감한다. 운영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운영되느냐고 자문할 때 자신 있게 나설 기업은 많지 않다. 사내제안제도의 사활은 ‘기업문화’에 달렸다. 여기에 CEO의 의지와 프로다운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뒷받침돼야 한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