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4개 면세점의 영업권(특허)을 새로 주는 특허 심사가 오는 17일로 예정된 가운데, 경쟁에 뛰어든 유통 대기업들은 각각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며 '합격'을 자신하고 있다.

후보 업체들은 수 천억 원, 수조 원에 이르는 관광 투자 계획을 앞다퉈 내놓고, 면세점 수익의 사회 환원도 약속하고 나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면세점 특허 심사의 경우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까지 더해져 '셈법'이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만큼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혼전' 상황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 탈락 딛고 부활 꿈꾸는 롯데·SK
지난해 7월, 11월에 이은 '제 3차 면세점 대전'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작년 11월 입찰에서 탈락한 롯데와 SK가 과연 부활할 수 있을지 여부다.

당시 롯데면세점은 한 해 매출이 5천억 원에 이르던 잠실점(월드타워점)을 잃어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고, SK도 직원들의 눈물 속에 23년이나 운영한 서울 광진구 워커힐 면세점을 접었다.

따라서 두 업체는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이번 '패자 부활전' 기회를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국내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은 13일 앞으로 5년 동안(2017~2021년) 외국인 관광객 유치, 강남권 관광 인프라 구축, 중소 협력업체 지원 등에 2조3천억여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이 기간 한국을 찾는 외국인(추정값)의 17% 정도인 1천700만여 명을 롯데면세점이 유치하겠다는 목표다.

롯데면세점은 오는 17일 마지막 심사 과정인 프레젠테이션(PT)에서 이 계획이 실행되면 5년간 연관 산업을 포함해 3만4천여 명의 직·간접 고용창출과 7조 원의 경제적 부가가치, 7조6천억여 원의 외화 획득 효과가 있다고 강조할 예정이다.

워커힐 면세점의 경우 최신원 SK네트웍스(워커힐면세점 운영사) 회장이 직접 뛰고 있다.

최 회장은 12일 면세본부를 방문, "뜻하지 않은 특허 상실로 면세점 영업이 중단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구성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온 만큼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SK네트웍스는 최근 50억 원을 투자해 업무처리 속도, 마케팅 활용 측면에서 성능과 안정성이 크게 개선된 '면세 운영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이번 서울면세점 추가 입찰 자체가 '특혜'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롯데와 SK 입장에서 불안한 점이다.

물론 롯데와 SK는 의혹과는 달리, 그룹 회장들의 박근혜 대통령 면담과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이 면세점 추가 입찰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오전에도 송영길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야(野) 3당과 무소속 의원 61명은 공동 성명을 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등에서 언급된 면세점 의혹 문제를 지적하며 "평가의 불투명성, 최순실 로비 창구 의혹 등으로 정부 스스로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깨고도 일관성·예측 가능성을 위해 입찰을 강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면세점 입찰 중단을 요구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도 이번 주 중 면세점 주무부처인 관세청에 대한 감사 청구를 결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 HDC신라ㆍ신세계-영역확장, 현대百-신규진출 노려
만의 하나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롯데와 SK의 부활이 모두 무산될 경우에는 나머지 HDC신라(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 합작)·현대백화점·신세계는 대기업 몫으로 배정된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 3장을 사이좋게 나눠 가질 수도 있다.

이는 롯데·SK를 제외한 3개 업체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무혈입성' 시나리오다.

하지만 관세청과 심사위원이 일단 최종 수사·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치·형사적 판단을 유보하고, 순수하게 면세점 역량만을 기준으로 심사할 경우 수 십 년의 면세점 운영 경험과 노하우 등을 고려할 때 롯데와 SK가 동반 탈락할 떨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롯데와 SK가 모두 부활하거나, 하나가 살아남을 경우 HDC신라(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 합작), 현대백화점, 신세계는 치열한 순위경쟁을 벌여야 한다.

HDC신라면세점은 삼성동 아이파크타워 면세점을 '문화관광허브'로 키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쇼핑 뿐 아니라 IT(정보기술)와 한류를 결합한 체험관,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편집매장 등을 설치해 '싼커'(散客·중국 개별관광객)들이 쇼핑과 오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체험형 면세점'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용산 HDC신라 면세점이 곧 흑자 전환을 앞둘 만큼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도 내세울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신라로서는 현재 20~30% 수준인 시장 점유율이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50%가 넘는 롯데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업체들로부터 '독과점'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경우 지난해 7월 1차 면세점 대전에서 탈락한 아픈 경험이 있는 데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이른바 '유통 빅 3'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 시내 면세점을 갖지 못한 상태라 특허권이 더욱 절실한 입장이다.

현대는 무역센터점 3개층(8~10층)에 면적 1만4천5㎡(약 4천244평) 규모의 대형 럭셔리 면세점을 마련할 계획이다.

넓은 매장 면적과 기존 면세점 대비 1.5배 이상 넓은 고객 통로 등을 앞세워 내·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동호 현대면세점 대표는 "작년 면세점 입찰에서 탈락한 뒤 1년여간 절치부심하며 철저히 준비했다"며 "향후 면세점 특허 취득 후 5년 누계 예상 영업이익의 20%인 500억 원을 환원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롯데·HDC신라·신세계 등에 비해 열세로 평가되는 명품 유치 능력, 지난해 7월 면세점 입찰 당시 평가 결과 순위가 하위권에 머무른 사실 등이 약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신세계는 지난해 11월 중구 본점을 앞세워 서울 시내 면세점 시장 입성에 성공한 뒤 두 번째 서울면세점을 꿈꾸고 있다.

앞서 12일 신세계디에프(신세계면세점 운영사)는 강남지역에 추가로 면세점 특허(영업권)를 얻을 경우 앞으로 5년간 3천500억 원을 인근 서초·강남 지역 관광 활성화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계획에 따르면 신세계디에프는 서울 서초구 반포로 센트럴시티 내 1만3천350㎡(약 4천100평) 규모로 짓는 면세점을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문화·예술·관광 허브'로 키우기 위해 우선 예술의 전당, 반포대로, 세빛섬을 잇는 4.6㎞ 보행로를 만들어 '예술의 거리' 조성을 유도한다.

하지만 지난 5월 18일 문을 연 서울 중구 신세계면세점이 개장 후 9월 말까지 4개월 10일여 동안 1천212억 원의 매출과 372억 원의 누적 영업손실을 내 영업이익률이 -30%에 불과하다는 점, 업계에서 "무리한 중국 관광객 모집으로 중국 여행사에 대한 송객 수수료만 높여주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점 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