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개발원 "산업의 가능 이해못해 단기유동성만 공급, 위험부담 회피"

세계 7위권의 원양선사인 한진해운이 사실상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여전히 막대한 적자를 내는 상태에 놓여 미래가 불투명하다.

해운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별 효과를 내지 못해 우리나라는 해운 강국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처지에 놓였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이 산업의 국가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단기 유동성 지원에 그쳤고, 위험부담을 회피한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30일 지적했다.

KMI는 이날 발표한 '해운업 구조조정 지원, 정책금융 왜 실효성 없었나?'라는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에 대한 금융은 단기 유동성 지원에 그쳤으며, 구조조정 방침 결정 후에는 조선업에 비해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는 실효적인 지원이 미약했다"고 밝혔다.

정부(채권단)는 시장안정 유동화증권 발행을 통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총 1조9천억원, 운영자금 기한연장 등으로 8천억원을 지원했다.

시장안정 유동화증권은 일시적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회사채와 채권을 한데 묶은 뒤 신용보강을 통해 우량등급으로 만든 증권으로 신용보증기금이 원리금 상환을 보증한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은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유상증자와 출자전환 등 자본을 확충하는 행태로 추진됐다.

이처럼 해운과 조선업에 대한 지원방식이 다른 것은 대우해양조선이 국책은행 소유기업이라는 지배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KMI는 분석했다.

지난해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주식분포를 보면 산업은행 49.7%를 보유해 최대주주이고, 금융위원회가 8.5%의 지분을 소유하는 등 사실상 국영기업형태이다.

한진해운은 대한항공(33.23%)이 최대주주이고, 현대상선은 현대엘리베이터(17.96%)가 최대주주인 순수 민간기업이다.

국책은행이 해운업 경영정상화에 대한 관심이 조선업에 비해 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KMI는 풀이했다.

이 때문에 국책은행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정책적 측면보다는 은행이 추가로 지게 될 위험(리스크)을 중시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KMI는 지적했다.

국책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위험만 우선 고려했다는 방증은 해운업 지원에 참여했던 신용보증기금의 손실이 우려된다는 지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용보증기금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사채 차환에 지원한 금액은 각각 4천944억원과 4천456억원으로 대부분이 채무 재조정과정에서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운업 구조조정으로 최대 9천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신용보증기금이 떠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전에 정상화를 위해 부족하다고 추정된 3천억을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손실이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측면에서 국책은행이 해운업 지원 과정에서 타 기관과 산업적 측면을 고려했는지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KMI는 강조했다.

KMI는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국책은행이 산업정책적 관점에서 정책금융기관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해운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해운과 연계된 수출입화주, 중소물류업계 등의 추가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단기유동성 지원에 그친 것은 근시안적인 정책금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국책은행이 산업의 국가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책금융을 운용해야 한다고 KMI는 주장했다.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lyh950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