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4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금서가 된 ‘위험한 소설’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4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소설의 힘은 얼마나 될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한 장면을 2000여명이 모방하고 베르테르가 즐겨 입었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을 정도라면 ‘아주 세다’고 말해도 될 듯하다. 1774년에 출간된 이 ‘위험한 소설’은 한때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으나 18세기 전 유럽을 뒤흔들며 베르테르 신드롬을 전파했다.

오늘날까지도 가장 성공한 문학작품으로 손꼽히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뭘까. 격정에 휩싸인 베르테르의 심경이 혼돈과 격정의 청춘을 대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와 편집자가 못다한 얘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베르테르가 보낸 82편의 편지에는 절절한 사랑뿐만 아니라 당시 젊은이들의 고뇌, 아름다운 자연 묘사, 그 시대 삶과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

서간소설은 인간의 내면 풍경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점과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독자를 고백의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강점이 있다. 독자들은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를 마치 자신이 받은 것으로 생각해 강하게 빨려 들어간다.

괴테가 친구의 연인을 사랑한 경험을 바탕으로 25세에 썼다는 점도 주효했다. 긴 시간이 지난 후 과거를 회상하며 베르테르를 그렸다면 훨씬 화력이 덜했을 것이다. 감성이 펄펄 살아 있는 젊음의 한가운데서 실연의 아픔을 불쏘시개 삼아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이다.

약혼자가 있는 로테

괴테
괴테
베르테르와 로테를 만나보자. 왜 18세기 젊은이들이 무방비로 빨려 들어갔는지, 왜 베르테르는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했는지, 로테의 마음은 과연 어땠는지, 21세기 청년의 냉철한 눈으로 지켜보라. 베르테르는 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조심하세요. 사랑에 빠질지도 모르니까”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책을 많이 읽어 언변이 뛰어난 데다 춤을 잘 추며 다정하기까지 한 아름다운 로테. 첫날 베르테르는 ‘내가 사랑하고 늘 함께이고 싶은 이 소녀가 다른 남자와 왈츠를 추는 일은 절대 없게 하리라’고 맹세하면서 ’설혹 내가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말이지’라고 읊조린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너무 자주 찾아가지 말자고 스스로 몇 번이나 다짐하지만 점점 더 빠져든다. 빌헬름이 권하는 일도 마다하고 그림 그리기도 등한시하면서 로테를 향한 마음을 꺾지 못한다. 로테의 약혼자 ‘의젓하고 착실해서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알베르트가 여행에서 돌아오지만 베르테르의 마음은 식지 않는다.

셋이 대화할 때 베르테르는 “기쁨과 슬픔, 고통 모두 어느 정도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면 파멸해버리고 만다”며 자신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토로한다. 알베르트는 상식적인 답변을 하며 “궤변”이라고 묵살하고 로테는 안타깝기만 하다. 베르테르는 실연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여자 얘기를 들려주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절망도 진정되고 그대를 위로해줄 다른 남자가 또 나타날 텐데, 옆에서 이런 소리나 늘어놓는 작자들은 저주나 받으라지요” 하며 절망스러운 마음을 드러낸다.

83세까지 충실히 산 괴테

이근미 < 소설가 >
이근미 < 소설가 >
베르테르는 로테를 잊기 위해 멀리 떠나 새로운 일을 하며 다른 여성도 만나보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다. 로테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데다 로테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확인한 뒤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젊은 베르테르에게 짧은 생을 부여한 괴테는 어떻게 살았을까? 23세였던 1772년 6월에 로테의 모델인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했지만 9월에 단념하고 귀향한다. 11월에 친구 예루살렘이 상관의 부인을 사랑하다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더욱이 그 총을 빌려준 이가 샤를로테의 약혼자라는 얘기를 들은 괴테. 바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14주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해 유명 작가가 된다.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그리고 많은 양의 서한을 남긴 괴테는 83세에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아픔을 딛고 삶의 경험을 작품에 담아 인류에 전한 괴테. 청춘들에게 격랑이 휘몰아치는 시기를 지혜롭게 넘기라는 의미에서 베르테르를 소개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