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울=연합뉴스) 최현석 특파원 정성호 기자=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업의 인증기준을 크게 높이는 방안을 추진해 한국 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2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상하이(上海)증권보 등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22일 공개한 자동차 배터리업계 모범기준 개정안 의견수렴 안에서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전지 생산기업의 연간 생산능력을 80억와트시(Wh)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이는 종전 2억Wh에서 무려 40배 높인 것이다. 자동차 배터리 기업이 2년간 중대한 안전사고가 없어야 한다는 기준도 추가했다.

공업정보화부는 모범기준 개정안이 배터리 기업의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능력 개선과 구조조정 필요성 등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연간 생산능력 80억Wh 확보를 위해서는 100억여 위안(1조6천980억여 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며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올해 생산능력 80억Wh를 달성한 기업이 비야디(比亞迪·BYD)와 닝더스다이(寧德時代)뿐이라고 전했다.

공업정보화부는 업계와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초 개정안을 확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정안이 확정되면 중국에 합작법인을 설립해 배터리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SDI와 LG화학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두 회사의 중국 내 생산능력은 20억∼30억Wh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개정안의 기준을 맞추려면 지금보다 생산능력을 3∼4배로 늘려야 한다. 사실상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모범기준 인증을 전기차 보조금 지급의 조건으로 활용할 경우 삼성SDI와 LG화학은 크게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 전기차 보조금이 전기차 가격의 최대 절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중국 내 판매가 매우 어려워진다. 다만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인증을 보조금 지급의 조건으로 활용한다는 구절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모범기준 인증과 보조금 지급을 연계하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이번 조치의 배경과 향후 닥칠 영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이 노리는 정책적 목표가 무엇이고 국내 업체들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아직 파악하기 어렵다"며 "다각도로 개정안의 배경과 파급 효과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처가 자국 산업 보호란 목적 외에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등에 대한 견제의 의미를 담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지난 6월 제4차 전기차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에 신청했다 탈락한 뒤 5차 심사에 대비해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5차 심사 신청을 받지 않으면서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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