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수연에게 이렇게 털털한 매력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표독스러운 악녀 캐릭터로 단숨에 눈도장을 찍은 한수연은 인터뷰 내내 쉼 없이 환한 미소를 보이며 깔깔댄다. 브라운관에 비치던 그와는 사뭇 다른, 훨씬 생생한 아름다움을 지닌 다정한 모습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대중에게 더 큰 신뢰감을 준다면, 배우로서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 여기에 욕심도 많고 열정도 넘친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묵묵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한수연은 그런 배우다. 진정으로 일을 즐기는 사람의 여유와 에너지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한수연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촬영하며 느낀 소회와 악녀 중전 캐릭터를 그려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털어놨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저를 굉장히 아프게도 하고, 괴롭힌 작품이지만 그만큼 따스하게 사랑으로 감싸 안아준 고마운 작품이에요. 저 스스로 잘 하고 싶어 혹독하게 했어요. 결과가 대중의 사랑을 받아서 좋아요.” 2006년 데뷔한 뒤 한수연은 순정파 착한 역을 도맡아 했다. 이후 다양한 변신에도 성공하며 이미지를 확 바꿨으나 지금처럼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건 ‘구르미 그린 달빛’이 처음이었다. 욕도 먹었지만 ‘한수연’이라는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 시켰다. “메인 감독님과 미팅을 했어요. 대본을 주시고 5분 정도 여러 역할을 봤어요.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캐릭터는 중전 하나였어요. 악역인데, 대사가 매력적이더라고요. 묘한 이끌림이 있었죠. 그리고 몇 주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안 됐나보다 했는데, 영화 ‘더 킹’을 찍고 있을 때 연락이 왔어요. 고생의 시작이면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어요.” ‘구르미 그린 달빛’은 모든 배우들이 적재적소에서 맹활약했다. 그 중에서도 자신 만의 스토리로 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한수연은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주인공 다음으로 각광받은 배우이다. 시청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악역 1인자는 단연 한수연. 기생 출신 중전이라는 비밀을 품고 야망에 독기까지 내비친 한수연은 ‘구르미 그린 달빛’ 속 또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데뷔 후 첫 악역으로 변신해 클래스가 다른 악녀 중전의 삶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악역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악역 중전의 역할과 몫에 대해 생각했죠. 악역으로서 기능적인 부분도 생각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내가 중전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처음에는 잠깐 등장해서 이영과 라온 사이에서 훼방만 놓고 사라지지만, 회가 지나면서 중전에 대한 얘기가 하나씩 풀어지잖아요.” 등장부터 한껏 날서있는 모습을 보인 한수연은 마지막까지 제 자식을 버리며 악독한 캐릭터의 끝을 보였다. 눈을 치켜뜨며 온 얼굴 근육을 이용해 표독스러움을 내뿜는 연기는 가히 한수연의 전매특허. 청순가련했던 기존의 이미지를 단박에 깨부수며 ‘구르미 그린 달빛’의 수혜자가 됐다. “감독님이 ‘전통 사극이 아니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제 목소리의 중간 톤을 썼어요. 저는 어느 배역을 하던 저로부터 시작해요. 중전은 기생 엄마에게서 태어나고, 보러 오지도 않던 아버지가 영의정이라고 나타나서 중전 자리에 앉히고, 그러다 대군을 낳으면 세상이 내 밑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악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표정과 목소리 톤만으로 더 서늘하게 만들고자 했어요. 저만의 악역을 만들고 싶었죠. 감독님이 저에게는 많은 주문을 안 하셨어요. 자신감이라기보다 나를 몰아 붙여서 막연한 믿음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작품 중에 제일 힘들게 한 작품이에요.” 극중 중전은 결국 정의를 택해 스스로 폐위를 맞았다. 마지막 회에서 중전은 본인이 낳은 아이를 없애버리라는 아버지 김헌(천호진)의 말에 괴로워하다 아이를 처리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중전은 그 현장을 급습한 세자 이영(박보검)에 의해 덜미를 잡혔고, 직접 본인의 아이임을 밝히라는 이영을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울음을 터트린 아이에게 결국 마음이 흔들린다. 또한 김헌의 악행을 직접 밝히는 역할을 해 스토리에 반전을 꾀하기도 했다. 그간 많은 악행들을 저질렀지만 천한 기생 출신이라는 약점과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 칠 수밖에 없었던 중전의 가슴 아픈 사실이 드러났다. 한수연은 비록 악녀였지만 사랑받지 못한 가엾은 캐릭터 중전의 감정을 실감 나게 연기해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여러 장면이 아직도 뚜렷이 생각이 나요. 용기를 내서 숨겨왔던 모든 칼과 손톱과 발톱을 드러내며 천호진 선배님을 겁박하는 장면과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고백하면서 아버지를 죽음으로 모는 장면이요. 저에게는 중요한 장면인데, 종영하는 날까지 찍다보니 마음이 급했어요. 생각보다 잘 나왔어요. 아이를 버리고 가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보검이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데, 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감정을 잡아야 하는 장면이라 힘들었어요. 힘든 만큼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배우들이 말미에 가면 역할이 딱 붙잖아요.” 한수연은 ‘구르미 그린 달빛’에 출연하는 동안 왕세자 이영(박보검)과 대립하며 악녀로 국민적(?)인 미움을 샀다. “이영(벅보검), 라온(김유정), 윤성(진영), 김헌(천호진)을 대하는 감정이 당연히 달랐죠. 라온은 중전에게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이영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걸 알고 ‘쓸모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죠. 이영은 세자지만 열등감이 많아요. 중정은 태생부터 천하고, 피해의식도 많고, 아버지의 사랑도 못 받는데, 이영은 왕실의 피가 흐르고, 중전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영만 없으면 중전 아들이 왕에 오르니까요. 김헌은 서열로는 중전이 위에 있지만 조정하는 데로 중전이 행동하잖아요. 중전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악한 짓까지 하잖아요. 윤성에게는 아주 조금은 애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다가서지는 못 하고, 윤성이 마지막에 기회를 줄 때는 흔들렸죠. 엄청 모질게는 못 했어요.” 한수연은 극 중 반전의 좋은 결론을 냈다는 사실에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어떻게 악녀를 소화해낼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악녀 연기도 노력으로 만들어 냈다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단지 캐릭터가 독한 악녀라 사랑받은 건 아니었다. 중전 캐릭터를 만나 그의 연기력이 빛났다는 평가도 많았다. “악역 연기에 대한 제 스스로의 평가는 45점 정도예요. 너무 힘들게 연기했어요.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 정도면 첫 악역을 잘 했어요. 이상향도 높고, 앞으로 연기를 잘 하고 싶으니까 그 정도 점수를 줄게요. 예전에는 작품을 하고 있어도 친구들의 피드백도 없었어요. ‘구르미 그린 달빛’은 제 주변에서는 다 보는 것 같더라고요. 아직 실감을 못 하지만 세부에 갔을 때 많은 인파들이 몰렸어요. 다들 ‘퀸’, ‘마마’라고 불러 놀랐고, 신기했어요.” 다른 악녀 캐릭터가 많았지만 중전은 누구보다 독하고 뻔뻔했다. 악녀의 새로운 진화라는 말도 나왔다. 연기하는 배우의 마음은 어땠을까. “중전이 악행을 일삼으니까 불쌍하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오히려 나중에 폐비가 되고 나서 편안한 시간이 올 것 같았어요. 제가 지친만큼 중전도 지쳤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편안해 지겠죠. 충분히 벌 받고 뉘우치고. 오히려 어렸을 때 기생들 틈에서 자랄 때가 가장 편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악한 것은 없어요. 올라와도 어떻게든 풀려고 해요. 종교도 있고, 평화주의자거든요. 쌓이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 스타일이죠.” 배우들이 정점을 찍으면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는 다시 맡고 싶지 않은 게 일반적이지만, 한수연은 달랐다. 그는 또 악녀 캐릭터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저는 악역 제안이 온다면 당연히 할 거예요. 주변에서도 ‘한 번 했으니 두 번 정도 더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사극을 했으니, 현대극에서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내공이 쌓였으니 여유 있게 해보고 싶어요.” 한수연은 얼굴을 알린 시기에 비해 연기를 시작한 지는 꽤 된 배우다. KBS 드라마 ‘일말의 순정’, tvN ‘일리 있는 사랑’, OCN ‘실종느와르 M’, ‘뱀파이어 탐정’ 등 다양한 장르에서 출연하며 지금까지 연기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헝가리에 살 때 영화광이었어요. 초등학생 때 학교 끝나고 영화 한 편 보는 게 낙이었죠. 영화관을 너무 좋아했어요. 거기 나오는 여배우들이 너무 매혹적이라 그냥 로망이었어요. 그래서 한국 와서 계속 오디션을 봤어요. 2006년 드라마 ‘조용한 세상’으로 데뷔했어요.” 그가 10년 넘게 끊임없이 배우에 도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확신이었다. 배우에 대한 확신이 든 순간부터 계속해서 노력했고 그 선택을 번복하지 않았다. “다양한 인물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어요. 제 삶은 단조로운데, 배우의 가장 큰 매력은 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잖아요. 드라마틱하고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요. 제가 표현해 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무대 보다 매체에 끌리는 것 같아요. 여운을 간직하고 가고 싶어요.” 열심히 노력했기에 그는 지나온 세월에 대해 아쉬움도 없었다. 그에게는 뜨거운 인기, 지나온 과정들보다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믿음이 더 중요했다. 사랑 받는 여배우가 된 한수연. 그는 지금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제가 미인도 아니고,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기가 특출 나지도 않고, 운도 중요한데 좋았던 것도 아니고 제가 한 작품 중에 인기 있었던 작품은 처음이에요. 20대에 했던 작품들이 단편, 독립 영화예요. 연기는 꾸준히 하지만 노출이 안 된 영화도 있어요. 그런 것도 나에게는 저에게는 소중한 시간이고, 작품이에요. 오히려 그래서 연기가 발전했어요. 그 안에 제가 생각하는 나의 대표작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유럽 정서가 있어요. 끌리는 시나리오들이 그렇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만 하게 됐죠. 또 그런 감독님들이 저를 찾아주세요. 기회가 된다면 사랑 받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 박해일 선배님을 보면 사랑 받는 작품도 하지만 그런 작품들도 하시니까요.” 한국나이로 30대 중반. 한수연은 이제 연애뿐만 아니라 결혼을 논해야 시기이다. 결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애인이 없어요. 30살 들어서는 연애를 못 해봤어요. 20대에는 꾸준히 했다고 생각해요. 남자에게 실망도 해보고, 외롭기는 해요. 너무 피곤할 때는 남자에게 의지하고,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엄마가 요즘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은연중에 이제 좋은 남자 만나라고 하세요.” 한수연은 더 많은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높은 곳을 올라가려는 것보다는 꾸준히 연기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배우라는 직업을 오랫동안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스스로 내려놓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주변 분들이 제에게 쉬지 않고 활동을 한다고 하시는데, 조연은 많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래요. 조연일 때는 안 바빠요. 하지만 힘들어요. 어쩌다 현장에 가기 때문에 감 잡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차기작이 안 정해지면 올해 연말은 그냥 쉬고 싶어요. 밀린 집안일도 하고, 문화생활, 여행, 재충전의 시간을 같고 싶어요. 작년 말부터 쉬지 않고 여섯 작품을 연달아 했어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네요. 함께할 연인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고 싶어요. 러브러브한 작품도 해보고 싶고요. 그럼 대리만족이라도 느끼지 않을까요.”(웃음) (사진 = 스튜디오 아리 이한석)
온라인정보팀 유병철기자 ybc@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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