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불쾌한 수용소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41)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8년째 수용소에 갇혀있다.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서 스탈린이 철권통치를 하던 1950년대 냉전시대가 무대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슈호프가 시베리아에 있는 특별수용소에서 오전 5시부터 밤 10시까지의 하루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 맨 마지막 부분에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하며 그날 하루를 정리한다.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점심 때는 죽 그릇 수를 속여 두 그릇이나 얻어먹었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 나게 벽돌을 쌓아올렸다. 줄칼 토막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기다려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도 사왔다.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

슈호프의 행복한 하루를 반대로 해석하는 것이 수용소에서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만 간수들 눈에 어긋나면 수용소 내 영창으로 끌려가고, 간수들이 식재료를 빼돌리고 음식을 제대로 배분하지 않아 죄수들은 늘 허기에 시달리고, 잠시도 쉬지 못하게 끊임없이 의미없는 일을 시키고, 제대로 된 생활용품 하나 없는 춥고 더러운 곳에서 생활하고, 시도 때도 없이 수색한 뒤 불합리한 지시를 내리고, 휴일에도 일을 시키며 괴롭히고,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거나 쉬지 못하는 ‘우울하고 불쾌한 일 투성이’인 곳이 수용소이다.

복종 안 하면 형기 늘어나

솔제니친
솔제니친
하지만 슈호프는 형기를 다 채운 뒤에 다시 수용소에 남는 사람들을 보면서 요령껏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하루하루를 사는 데 익숙해졌다. 대개 25년형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10년형을 받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슈호프. 힘겹게 사는 아내에게 위문품을 보내지 말라고 한 뒤 자잘한 아르바이트를 해 약간의 돈을 마련하는 그의 몸부림이 눈물겹다. 아내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 편지도 쓰지 못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간수들의 말이 곧 법이니 죄수들은 인권 사각지대에서 복종하며 견디는 수밖에 없다. 안 그랬다가는 형기가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반원 전체가 벌을 받으니 늘 가시방석이다. 죄수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밤늦게까지 일하고 숙소로 돌아갈 때 최대한 천천히 걸어 간수가 늦게 퇴근하게 만드는 일 정도이다.

수용소에 끌려온 이유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 슈호프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에게 포위돼 ‘죽어 자빠진 말 발굽을 칼로 깎아 그 각질부를 물에 불려 먹을’ 정도로 어려움에 처했다. 독일군에게 이틀간 포로로 잡혀 있다가 탈출해 무사귀환했건만 포로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수용소행이 결정됐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작가 솔제니친이 감옥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내용을 작품화해 세밀하고 생생하다. 솔제니친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최전선에서 포병으로 참전할 때 친구에게 스탈린을 비방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적발돼 시베리아 교도수용소에서 8년을 지냈다. 형기를 마치고 다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1953년 암이 발견돼 당국의 승인으로 타슈켄트의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41)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저항 문학가…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41)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솔제니친은 1962년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스탈린 시대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면서 일약 저항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공산당국이 핍박을 가했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 소설을 썼고 작품 발표가 불가능해졌을 때 해외 출판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세계가 솔제니친의 작품에 환호해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여했지만 소련은 그를 추방했고, 20년 만인 1994년 공산체제가 무너진 조국으로 돌아갔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성경을 읽는 침례교인, 진한 우정을 나누는 에스토니아인, 늘 풍성한 소포를 받아 부러움을 사는 체자리 등. 힘겨워도 비굴하지 않은 초긍정 사나이 슈호프의 마음으로 수용소를 두루 살펴보라. 슈호프만큼의 자유도 누리지 못하는 북한 정치수용소 사람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면서 자유의 고마움을 새삼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