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쌀이 남아돈다. 올해 쌀 생산량은 420만t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인구를 대략 5000만명으로 할 때 1인당 80㎏(한 가마니)씩 돌아가는 양이다. 이 가운데 밥을 지어 먹는 쌀은 1인당 63㎏뿐이다. 비축용과 가공용 등을 빼도 7㎏씩, 35만t이 남는다. 이 남는 쌀은 정부가 전량 사들인다는 방침이다. 풍년이 들수록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지는 이유다.
[Cover Story] 왜 우리는 맛없는 쌀을 비싸게 사먹나
과잉생산에도 쌀보조금을 준다

우리나라는 농업인의 소득 안정을 명목으로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을 준다. 이른바 ‘농업직불금’이 그것이다. 현재 시행되는 직불금은 경영이양직불제(1997년 시행), 쌀고정·변동직불제(2001), 피해보전직불제(2004), 폐업지원금(2004), 조건불리지역직접지불제(2004), 경관보전직접지불제(2005), 밭농업직불제(2012) 등 8개다. 이 중 경영이양, 피해보전, 폐업지원은 농업경영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사실상 5가지 형태의 농업직불금이 있는 셈이다. 보조금은 주로 쌀 생산량이나 가격 변동에 관계없이 논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에게 농사면적당 일정액을 지불(고정직불금)하는 방식과 쌀 가격이 정부의 기준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그 차액의 85%를 정부가 추가로 농가에 지불(변동직불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농가의 소득 안정을 위해 정부가 지출하는 돈은 상당하다. 정부가 2015년에 지불한 변동직불금은 7257억원이다. 전문가들은 2016년산 쌀 변동직불금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의 재고량이 많고 올해도 풍년이 예상돼 산지 쌀 가격이 지난해보다 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지난해 변동직불금은 전년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 현재 정부가 보유한 쌀 재고는 135만t으로 적정량의 2배에 달한다. 사들인 쌀을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돈만도 연간 1000억원 정도다.

풍년에도 의무적으로 외국 쌀 수입해야

[Cover Story] 왜 우리는 맛없는 쌀을 비싸게 사먹나
국내에서 생산된 쌀이 소비보다 훨씬 많은데도 정부는 해외에서 쌀을 수입한다. 국내 소비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여서 쌀농사의 흉·풍년에 상관없이 구조적으로 쌀이 과잉생산되고 있는 구조다. 하지만 외국 쌀의 수입은 자유무역이 대세인 이 시대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가 비교우위에 있는 전자·반도체·철강 등을 수출하려면 현실적으로 비교열위에 있는 농산물에서 어느 정도 양보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는 게 국제교역의 원칙이다. 정부가 농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쌀 시장 개방으로 인한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정책적 목적도 있다.

정부는 쌀이 우리나라의 주식이고 쌀 수입으로 인한 농민 피해 등을 감안해 수입쌀에 대해 고율(513%)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외국산 쌀 가격이 국내 쌀의 20%라고 해도 수입관세를 부과하면 국내산보다 가격이 높아진다. 정부는 이와 관계없이 의무수입물량(최소시장접근·MMA:Minimum Market Access)으로 연간 40만t 정도를 수입해야한다. 향후 협상을 통해 MMA 수입물량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여전히 안고있다.

농업보호가 농업을 뒤처지게 한다

쌀이 과잉생산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부의 보조금으로 과잉생산을 해도 정부가 이를 사주므로 농민 입장에선 쌀 가격 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일부 농민들이 채산성이 높은 여타 작물보다 벼농사를 고수하는 이유다. 또 하나는 쌀 소비 감소다. 쌀(밥) 위주의 식생활이 점차 서구형으로 바뀌면서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과잉 쌀생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쌀 위주의 농업에서 생산성이 높은 다른 작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농업직불금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의 농업 참여(기업농)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규모의 경제에 스마트농업을 접목하면 우리나라 농업도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이런 시도는 농민단체의 강력한 반발과 정치인들의 사실상 방관으로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2012년 동부팜한농은 경기 화성시에 대형 유리온실을 짓고 수출용 토마토를 재배하려 했으나 농민들의 반발로 사업을 접었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간척지인 전북 새만금에서 과학농업을 계획한 LG그룹 계열사 LG CNS의 ‘스마트농업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들 기업이 생산품 전량을 수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농민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한 때문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