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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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지방 사립대 교수 A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그는 산학협력을 통해 관계를 맺은 기업체에 제자들의 취업을 부탁해 왔다. 올해도 취업 시즌이 돌아왔지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사례가 아닌지 혼란스러운 탓이다.

국립대 교수 B씨가 외부 강연을 제의받고 수락한 시점은 김영란법 시행 전. 하지만 정작 강연은 법 시행 후에 진행됐다. 강연료가 김영란법 제10조(외부 강의 등의 사례금 수수 제한)가 규정한 20만원을 넘어 못내 꺼림칙한 심정이다.

지난달 28일 김영란법 시행 후 10일로 2주째를 맞았지만 세부 사례의 법 적용 여부에 대한 궁금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특히 김영란법이 명시한 ‘3·5·10’의 가액기준이 있는 금품 수수 조항과 달리, 청탁 관련 내용은 워낙 광범위하고 명확한 기준도 없어 당분간 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수도권 대학 취업지원 담당 직원 C씨는 “기업체에서 특정 교수에게 우수 학생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개인적 부탁’으로 간주하면 법에 저촉될지 헷갈린다”면서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부서 차원에서는 기업체 채용 공지나 홍보 정도만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영란법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자칫 학생 취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목. 실제로 졸업 전에 취업 확정된 대학생이 취업계를 제출하면 출석을 인정하는 관례도 ‘부정청탁’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나와 교육부가 대학들에 학칙 개정을 요청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박선규 성균관대 학생인재개발원장은 “교수가 좋은 학생을 회사에 추천하거나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게 불법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학생 취업은 나 몰라라 하고 손 놓으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지방대는 제자 취업을 알선하는 교수가 많은 걸로 안다. 추천 제도는 해외 선진국에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식 절차’와 ‘비개입’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취업컨설팅 업체 대표 D씨는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 교수가 취업 추천이나 알선을 한다고 해도 정상적인 기업의 채용 과정 중 일부고, 채용 절차에 교수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문제 될 소지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수 강연료의 경우 기준이 분명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정착될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대학 관계자들은 형평성 문제 때문에 우수 교수 유치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서울 소재 사립대 관계자 E씨는 “노벨상급 해외 석학들이 국내 대학에선 초빙석좌교수 자격으로 강연하곤 하는데 회당 수백만~수천만원이 든다”며 “단지 이름값만 보고 하는 강연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해외 유명 학자들과의 공동연구를 위한 네트워킹 하는 차원인데 김영란법 때문에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대학들은 이같은 김영란법 적용 관련 각종 문의사항을 취합해 국민권익위원회에 단체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기부자에 대한 예우 △교수의 기업 사외이사 등 겸직(급여 수령) △학생의 성적 정정 요청 등이 금품 등의 수수나 부정청탁에 해당하는지 등도 포함됐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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