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조분의 1초' 포착하는 슈퍼 현미경, 생명비밀 푼다
햇빛보다 100경(京)배 밝은 빛으로 살아 있는 세포와 분자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슈퍼 현미경’인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한국에 설치됐다. 치매 치료제와 항암제 개발, 10㎚ 이하 반도체 나노공정 개발에 활용돼 큰 성과를 낼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경북 포항 포스텍에서 열린 포항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 준공식에 참석해 “4세대 가속기는 광합성과 화학반응을 비롯해 인류가 풀지 못한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자 미래 신산업 선점에 필수적인 핵심 인프라”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포항에서 만들어질 ‘꿈의 빛’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는 물론 인류의 미래를 환히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2011년 착공해 5년 만에 준공됐다. 지곡동 일대 2만620㎡ 부지에 길이 1110m, 높이 3m로 건설된 국내에서 가장 긴 단층 건물이다. 사업비만 4298억원이 들어갔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해 물체를 꿰뚫는 엑스선 빛을 만든다. 1995년 가동을 시작한 3세대 가속기에서 만들어내는 엑스선 세기는 햇빛의 100억배다. 이번에 준공된 4세대는 그보다 1억배 강한 100경배에 이른다. 빛이 더 세다는 건 더 작은 세계를 밝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으로, 한국이 세 번째다.

방사광가속기를 산업 분야에서 활용해 성과를 올린 사례는 적지 않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단백질 결합 구조를 밝혀내 치료 효능이 나타나는 과정을 규명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철강재의 결함을 파악하는 데도 기여했다. 삼성전자는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광통신 반도체소자 불량률을 70%에서 10%로 개선했다.

단백질 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약 개발에도 유용하다. 바이러스 단백질이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방사광가속기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를 개발했다. 반도체 산업의 벽이나 다름없었던 10㎚ 이하 반도체 공정 개발도 가능해진다.

4세대 가속기는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동안 일어나는 현상까지 살필 수 있다.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물이 생성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식물 잎에서 일어나는 광합성 과정을 확인해 식물을 모방한 태양전지를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개발 과정에서 많은 부수적 성과도 나왔다. 주관기관인 포스텍은 비츠로테크, 금륭테크 등 국내 중소중견기업과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가속관, 에너지 배가 장치 등 핵심장치를 국산화해 약 500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5조4000억원에 이르는 세계 방사광가속기 건설 시장 진출의 기반을 마련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추격형 과학기술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에 승부를 거는 선도형 과학기술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세계를 선도해 나갈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심장이 돼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근태/장진모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