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영향으로 부실채권(NPL: non performing loan) 시장이 팽창하고 있다. 올 들어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부실화된 대출채권 매각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은행들로부터 부실채권을 사들인 뒤 다양한 방식으로 채권을 회수해 수익을 내는 연합자산관리(유암코), 대신F&I, 파인트리자산운용 등 부실채권 정리회사들엔 일감이 넘쳐나는 분위기다. 연기금·보험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자산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부실채권 투자를 늘리고 있는 가운데 KB금융그룹 등도 계열 자산운용회사를 통해 부실채권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부실채권시장 급팽창] 기업 구조조정의 그늘…올 부실채권시장 5.9조
◆부실채권 시장, 2012년 이후 최대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4분기 산업 수출입 신한 국민 KEB하나 우리 농협 등 국내 은행권이 매각할 부실채권 규모는 2조6200억원가량이다. 전년 동기 2조1100억원에 비해 5100억원(24%) 많다. 은행들이 올 들어 지금까지 매각한 부실채권 규모는 3조2360억원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부실채권 시장 규모는 5조8560억원으로 새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직후인 2012년의 6조5300억원 이후 최대가 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국내 부실채권 시장 규모는 2012년 6조53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5조원, 2014년 4조6000억원, 2015년 5조1000억원을 나타냈다.

은행들은 대출의 회수 가능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3개월 미만 연체), 고정(3개월 이상 연체), 회수의문(3개월 이상 1년 미만 연체되고 채권회수 의문시), 추정손실(대출금을 떼이게 된 여신) 등 5단계로 여신 건전성을 구분한다. 고정 이하로 분류된 부실채권의 90%가량은 기업 대출이 차지하고 있다. 부실채권이 늘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고 이렇게 되면 은행의 자체 신용도가 나빠져 조달금리 등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매각해 은행의 건전성을 관리하고 있다.

올 상반기 말 기준 국내 은행 중에서는 산업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이 6.15%로 가장 높고 수출입은행이 4.34%로 뒤를 잇고 있다. 농협은행과 기업은행이 각각 1.82%와 1.35%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고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1.22%와 1.17%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0.95%와 0.82%로 1%를 밑돌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부실채권 비율을 낮추기 위해 올 상반기에 처음으로 부실채권 시장에 관련 채권을 내다 팔았다.

◆“시장 확대 전망”

은행권에서는 부실채권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속적인 기업 구조조정과 바젤Ⅲ 등 자산건전성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서다. 유암코 관계자는 “은행들이 전체 부실채권의 20~30%가량을 시장에 팔고 있는데, 신규 부실이 늘면 부실채권 시장 규모도 같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자 수요도 있다. 수익률 제고가 급선무인 연기금·보험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활발하게 부실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은행들이 부동산이나 기계 등이 담보로 잡힌 부실채권을 매각하면 기관투자가들은 이를 사들인 뒤 담보물건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최근 투자 경쟁이 심해지면서 부실채권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80% 이상으로 뛴 상태지만 여전히 연 5% 안팎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금융그룹들도 계열 자산운용회사를 통해 부실채권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KB금융의 KB자산운용은 부실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를 잇달아 출시했다. BNK금융 계열 자산운용회사인 BNK자산운용은 부실채권 전담조직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