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전 기업인에 '마중물'된 재기지원보증
울산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는 정호순 탑아이엔디 대표는 작년 9월 이전까지 지인 명의로 회사를 운영했다. 2011년 부도를 낸 탓이었다. 재기에 나섰지만 ‘실패한 기업인’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그는 대표 자리를 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정 대표가 자신의 이름을 대표 직함에 다시 쓸 수 있었던 것은 기술보증기금의 ‘재도전 기업주 재기지원보증’ 덕분이었다. 기보는 4억2500만원의 신규 보증을 통해 정 대표의 신용을 회복시켰다. 1억7000만원의 추가 자금도 지원해 줬다. 그는 “지난해 144억원의 매출을 거뒀고 이익도 내는 정상 기업이 됐다”며 “채무는 장기 분할로 갚고 있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보가 운영 중인 재기지원보증이 재도전 기업인들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된 2012년 이후 올 8월 말까지 432개 업체에 579억원(누적 기준)이 투입됐다. 매년 지원 규모가 느는 추세다. 2012년 63개 업체, 110억원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해 130개 업체, 176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제도는 기보가 과거 보증을 선 기업 중 은행 채무를 갚지 못한 곳이 대상이다. 회계·법률·기술 관련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거쳐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기술력이 일정 수준(기술사업 평가 B등급) 이상이면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심의에 통과하면 연체 등으로 높은 이자를 물고 있는 ‘악성 채무’를 ‘정상 채무’로 돌려 준다. 회생에 필요한 신규 자금도 지원해 준다. 체납된 세금을 정리하는 절차도 거친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재창업 재기지원보증’도 있다. 기보뿐 아니라 여러 금융회사에서 못 갚은 채무가 있는 사람도 이용할 수 있다. 재창업일로부터 5년 이내 기업이 대상이다. 보증 한도는 최대 30억원(운전자금은 10억원)이다.

기보 관계자는 “기술력과 사업 재개 의지가 있지만 기존 채무 탓에 재기가 힘든 성실 실패자를 돕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며 “올해만 140개 기업에 재기지원보증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