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사태 이후 목적지로 가지 못한 한진해운 선박들이 부산항으로 몰려오고 있다.

대부분 싣고 있던 컨테이너를 모두 부산항에 내려놓는다.

이달 1일 법정관리 개시 이후 22일까지 부산항에 접안한 한진해운 선박은 모두 24척으로 20피트 기준 4만5천400여개의 컨테이너를 내렸다고 항만공사가 23일 밝혔다.

이 때문에 한진해운 배들이 주로 이용하는 부산신항의 한진터미널은 이달 초에 장치장이 포화상태를 의미하는 80%를 훌쩍 넘어 90%에 육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부산항만공사가 부랴부랴 빈 컨테이너들을 배후단지에 있는 공용 장치장과 도로로 옮겨 겨우 75~77%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터미널 밖으로 빼낸 컨테이너만 8천개를 넘는다.

하지만 항만공사는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걱정한다.

국내로 돌아와 대기하는 배가 33척에 이르는데 대부분이 부산항에서 화물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광양항에 내릴 수도 있지만, 부산항만큼 항로가 다양하지 못해 결국 육상으로 부산까지 실어와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배들에 실린 컨테이너가 무려 28만개에 이른다.

부산신항 모든 터미널을 합친 장치능력 34만여개에 맞먹는 물량이다.

신항의 4개 터미널의 평소 장치율은 평균 61% 정도여서 7만개가량만 더 쌓이면 80%에 도달한다.

한진터미널에 내린 화물 가운데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 환적화물은 코스코와 양밍 등 CKYHE해운동맹의 다른 선사들이 대신 실어나르고 있지만 물량이 워낙 많아 속도가 더디다.

쌓인 컨테이너들이 빠져야 다시 한진해운 배들이 접안해 하역을 할 수 있지만 그게 여의치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항만공사는 한진터미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다른 터미널에 도움을 구하고 있다.

당장 다음 주에 접안하는 8척은 다른 터미널 4곳이 2척씩 맡아서 컨테이너를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터미널들은 "한진 화물 때문에 장치장에 무리가 가면 우리 고객 선사들에 대한 서비스 수준이 떨어져 자칫 부산항 전체가 외국 선사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항만공사 관계자는 "당장 급한 불은 꺼야 하지 않느냐고 다른 터미널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진해운 배들이 내려놓은 컨테이너 가운데 화물이 담긴 것들이 계속 쌓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빈 컨테이너와 달리 터미널 밖으로 옮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간 배에 실려 발이 묶이는 바람에 손상됐거나 판매 시기를 놓친 화물의 경우 국내외 화주들이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화물들은 최소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장치장을 차지한 채 부두 운영에 큰 지장을 준다.

항만공사 관계자는 "조양상선 파산 때 이처럼 화주들이 방치한 화물을 처리하는 데 3년이나 걸렸다"며 "한진해운은 그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방치되는 화물도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부산항만공사는 현재 배후단지에 6만개를 쌓을 공간을 확보했지만 한진해운 배들이 몰려오고 빠져나가지 못하는 화물이 쌓이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추가로 공간을 물색하고 있다.

항만공사 관계자는 "한진해운 사태 해결이 지연되면서 그 후폭풍이 부산항으로 거세게 밀려들고 있다"며 "요즘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형국"이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lyh950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