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아수라’ 포스터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아수라’ 포스터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947년 발표된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꿈과 현실, 이성과 욕망 사이를 줄타기 하는 나약한 인간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블랑시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뉴올리언스의 ‘극락’이라는 곳을 찾지만, 그곳은 ‘극락’이 아니다. 그를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비극’이다.

영화 ‘아수라’(감독 김성수)의 다섯 남자 역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러나 ‘아수라’가 비극적인 것은 이 전차에 오른 인물들이 각기 다른 ‘극락’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크기도, 모양도, 결도 다른 욕망들이 서로 맞부딪히면서 내는 굉음은 ‘아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그 파국의 중심에는 정우성이 있다. 말기 암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온갖 더러운 뒷일을 봐주며 악(惡)의 길로 들어선 한도경으로 변신했다. 한도경이 꿈꾸는 ‘극락’은 절대 악, 박성배의 하수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때마다 한도경의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이 스트레스가 ‘아수라’의 원동력이다.

영화 ‘아수라’ 스틸컷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아수라’ 스틸컷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아수라’는 범죄액션 영화답게 시선을 사로잡는 액션신이 가득하다. 그러나 쾌감보다는 통증이 느껴지는 액션이라는 점에서 다른 영화와 차이가 있다. 폭우 속 자동차 추격전이나 영화 후반부 모든 등장인물이 모여 서로를 물고 뜯는 장례식장의 핏빛 전쟁은 ‘아수라’의 액션이 어떤 스타일인지 보여준다. 한도경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들이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몸짓에서 느껴지는 인물들의 응축된 감정들이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을 압도한다.

‘국제시장’ ‘베테랑’ ‘히말라야’를 통해 자타가 공인하는 흥행보증수표로 자리 잡은 황정민이지만 최근 들어 ‘연기가 대동소이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황정민은 ‘아수라’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한다. 그야말로 ‘아수라’에 어울리는 괴물 같은 연기력으로 절대 악, 박성배 시장을 보여준다.

박성배는 ‘아수라’의 지배자와 같은 인물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냉혈한이다. 조여 오는 검찰의 압박, 충견이라 믿었던 한도경의 수상한 행동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배짱의 소유자다. 빈 틈 없는 박성배의 존재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도경의 고뇌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영화 ‘아수라’ 스틸컷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아수라’ 스틸컷 / 사진=CJ엔터테인먼트
박성배와 함께 한도경을 괴롭히는 또 다른 축은 김차인(곽도원) 검사다. 곽도원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변호인’에 이어 다시 한 번 악덕 검사를 맡았다. 그러나 ‘변호인’의 차동영과 ‘아수라’의 김차인은 다르다. 차동영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휘두르는 캐릭터였다면, 김차인은 자신이 가진 힘을 점점 잃어가면서 나약함이 드러나는 인물이다. 김차인은 ‘권력’이라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도경을 미끼로 삼아 박성배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김차인은 한도경의 약점을 잡아 미끼가 되길 거부하는 그를 조련하고, 난공불락인 박성배 앞에서도 절대 기 죽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김차인은 꼬리를 내리고 비굴해진다. 곽도원은 탁월한 완급조절로 김차인의 매력을 배가 시킨다.

주지훈과 정만식은 각각 악에 물들어 가는 도경의 후배 문선모와 폭력 행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검찰 수사관 도창학을 연기한다. 문선모는 순수와 비열을 오가는 인물로 한도경과 친형제처럼 막역한 사이였지만 박성배가 주는 돈의 맛을 알고 나서부터 점점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주지훈은 우정과 질투, 이성과 야망 사이에서 오가는 문선모의 야누스적인 매력을 강조한다.

정만식이 맡은 도창학은 ‘아수라’에서 유일하게 욕망이 보이지 않는 캐릭터다. 김차인 아래에서 일하며 한도경을 조련하는 도창학을 통해선 잘못된 신념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사람이 얼마나 죄책감 없이 악한 방법을 행사하는지 엿볼 수 있다.

영화 ‘아수라’ 스틸컷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아수라’ 스틸컷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아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인들의 향연이다. 김성수 감독은 악인들의 동정심 없는 세상을 스크린에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전체적으로 톤은 무거우며, 거친 액션이 수시로 펼쳐진다. 여기에 다섯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력이 관객들을 압도한다. 정통 범죄액션 느와르에 목말랐던 관객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취향 저격 영화가 될 것이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 또한 충분하다.

카리스마로 무장한 악당들의 치열한 핏빛전쟁, ‘아수라’는 오는 28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32분, 청소년 관람불가.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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