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주유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감소의 속도가 더 빨라지는 추세다. 영업과 휴업을 반복하는, 사실상 빈사 상태의 주유소도 1천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22일 한국주유소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말 1만2천717개였던 등록 주유소 수는 올해 7월 1만2천633개로 감소했다. 반년 남짓한 사이에 84곳이 문을 닫았다. '주유소=부자'라는 등식은 깨진 지 오래다. 최근에는 청주에서 주유소 2곳을 운영하던 일가족 4명이 주유소 경영난에 잇단 투자 실패 등으로 빚더미에 오르자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주유소는 2010년까지 줄곧 증가했다. 1995년 주유소 간 거리 제한이 완전히 사라진 게 방아쇠 구실을 했다. 하지만 2010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0년 1만3천349곳이었던 전국의 등록 주유소는 2011년 1만3천282곳, 2012년 1만3천198곳, 2013년 1만3천96곳, 2014년 1만2천936곳, 2015년 1만2천717곳으로 줄었다. 감소 폭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기간 해마다 감소한 주유소 수는 67곳, 84곳, 102곳, 160곳, 219곳이었다.

주유소 경영 악화의 일차적 원인은 과잉 경쟁이다. 주유소 업계 안팎에서는 전국의 적정 주유소 수를 8천개 정도로 보고 있다. 지금도 4천개 이상이 공급 과잉 상태란 얘기다. 여기에 알뜰주유소 도입,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 스마트폰으로 주유소별 휘발유·경유 가격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정보 인프라 등도 주유소 간 경쟁을 격화시켰다. 휘발유나 경유는 가격을 제외하면 제품의 품질이나 서비스 등에서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점도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선 10원이라도 더 싼 주유소를 찾게 된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는 기본적으로 박리다매의 구조"라며 "1천원어치 기름을 팔면 5원 정도 남기는 건데 자꾸만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그것조차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경영이 악화해도 쉽게 손을 털고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주유소는 큰 기름 탱크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주유소를 접을 때는 토양 오염을 정화해야 한다. 여기에 시설 철거비까지 합치면 주유소 한 곳당 폐업 비용이 평균 1억5천만원가량 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영업과 휴업을 반복하는 주유소도 1천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주유소협회는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 폐업 신고를 못 한 채 사실상 문을 닫은 '유령 주유소'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제대로 영업 중인 주유소는 1만여곳 정도인 셈이다.

주유소 업계는 주유소 폐업 때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망해서 문을 닫는 판에 1억5천만원이나 돈을 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일본의 사례도 있듯이 폐업 때 정부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난색을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경영 악화에 따른 폐업은 시장 영역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토지를 가진 주유소는 그 토지를 매각하거나 임대하면 폐업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주유소 사업자들이 공제조합을 설립해 이런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도 마련해뒀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또 전기자동차 보급을 위해 추진하는 전기차 충전소 확대 정책과 연계해 주유소가 전기차 충전소로 전업하거나 겸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갖춰놨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경영이 어려워진 주유소는 가짜 석유를 유통시키려는 업자들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며 "가짜 석유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한테 돌아간다는 점에서 주유소 폐업 비용 지원은 이런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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