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내년 1월부터 중국산 휘발유·경유 등을 국내에 수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농산물과 식품, 의류, 공산품, 전자제품에 이어 이제 기름도 중국산을 쓰게 될지 주목된다.

1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내년부터 중국에서 생산되는 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품질기준이 한국과 똑같은 수준으로 강화된다. 지금은 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황 함유량 규제 기준이 50ppm 이하이지만 내년 1월부터는 10ppm으로 낮춰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의 황 함유량 기준이 국내보다 크게 높아 통관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내년부터는 얼마든지 수입이 가능해진다. 중국 정부는 휘발유의 경우 황 함유량 기준을 2009년 150ppm 이하에서 2013년 50ppm 이하로, 경유는 2010년 350ppm 이하에서 2014년 50ppm 이하로 점차 강화해왔다.

중국 국영 석유사들은 이에 맞춰 품질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그동안 시설 투자 등을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중국 시장의 구조상 막대한 물량의 경유를 내다 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2013년까지만 해도 국내 정유업체들이 휘발유·경유를 내다 파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자체적인 정제 역량을 키우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2014년 3월 석유제품 수출액이 수입액을 앞지르면서 중국은 석유제품 순수출국으로 전환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2년 중국의 석유제품 무역수지는 114억 달러 적자였지만 2014년엔 20억3천600만 달러 흑자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47억5천1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 정유업체들은 자동차 보급과 함께 증가하는 국내 휘발유 수요 충족을 위해 정제량을 늘리고 있다. 문제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휘발유뿐 아니라 경유도 함께 생산된다는 점이다. 수요가 많지 않은 경유가 대량 생산되자 중국은 이를 아시아 역내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의 경유 수출량은 작년 상반기 하루 8만 배럴에서 하반기 21만 배럴로 늘었다. 또 작년 3월 아시아 시장에서 중국산 경유의 점유율은 4%였으나 12월에는 12%로 치솟았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은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한국, 싱가포르, 인도에 이어 아시아의 경유 수출국 4위에 올랐다. 이에 따라 판로를 찾고 있는 중국산 경유가 국내 시장에 몰려올 수도 있다. 중국 제품 특유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내수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제품 수입사들이 지금도 있지만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이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있어 많이 들여오지 않는 실정"이라며 "하지만 중국산 경유가 저가 공세를 펼칠 경우 통관 비용, 관세, 유통 비용 등을 감안해도 가격 경쟁력을 갖고 국내에서 팔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 등 경유를 대량으로 쓰는 소비처에서는 직접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올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가격 결정에 정부의 영향력이 있는 중국 경제 특성상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취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3%였던 석유제품 관세는 단계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다만 일각에선 중국 정유업계가 이미 포화 상태인 한국 시장 대신 석유제품 수요가 치솟고 있는 아시아의 다른 시장을 공략하기가 훨씬 쉽지 않겠느냐는 낙관론도 제기한다. 그렇다 해도 정유업계로서는 같은 해외 시장을 놓고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기는 마찬가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과거 중국은 석유제품을 내다 팔던 좋은 시장이었는데 이제 안방인 내수시장까지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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