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동차 회사(폭스바겐)의 잘못으로 인한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1년이 지났지만 소비자의 분노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
폭스바겐 중고차값 폭락…소비자들 폭발
국내 수입차 업체 대표가 최근 기자와 만나 폭스바겐발(發) ‘디젤 게이트’를 두고 한 말이다. 지난해 9월18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폭스바겐 디젤(경유)차의 배출가스 조작을 밝힌 지 1년이 지났지만 디젤 게이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에서는 배상 합의가 이뤄졌지만 한국에선 리콜(결함 시정) 계획이 세 차례나 반려됐다. 소비자들이 수조원의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등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 “차라리 환불해달라”

폭스바겐 중고차값 폭락…소비자들 폭발
디젤 게이트 여파는 컸다. 미국 정부는 폭스바겐을 상대로 최대 900억달러(약 106조원) 규모의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고 세계 기관투자가 280여곳은 독일 법원에 33억유로(약 4조402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폭스바겐은 지난 6월 미국 차량 소유주에게 1인당 최고 1만달러(약 116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확정지었다.

한국에서는 달랐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한국은 미국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배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한국과 유럽에서는 법적으로 임의 설정에 해당하지 않으며 미국에서만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한국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리콜 계획조차 수립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올 들어 세 차례에 걸쳐 폭스바겐의 리콜 계획이 미흡하다며 반려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리콜 계획서를 내면서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임의 설정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으로 폭스바겐 차량 12만6000대의 인증을 취소한 데 이어 지난달 초 배출가스와 소음 관련 서류 조작으로 8만3000대의 인증을 추가 취소했다. 차량 보유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부의 판매 정지 및 인증 취소 처분으로 중고차 가격이 폭락하고 있어서다.

폭스바겐 차량 보유자들은 환경부에 배출가스 조작이 확인된 디젤차에 대해 리콜 대신 아예 환불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국내 폭스바겐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세 차례나 매우 부실한 리콜 방안을 제출했다”며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즉시 자동차 교체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한국은 미국과 같은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어 폭스바겐이 리콜과 배상을 미적거려도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관련 제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폭스바겐 판매 급감

디젤 게이트 후폭풍은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올 8월까지 한국 폭스바겐의 차량 판매량은 2만3964대로 전년 동기(3만4460대)보다 30.5%나 급감했다. 비슷한 기간(2014년 9월~2015년 7월) 글로벌 시장 전체에서도 폭스바겐 차량은 2.4% 줄어든 536만1300대가 팔렸다. 특히 판매 정지가 본격화한 지난달 폭스바겐의 국내 판매량은 76대에 불과했다.

독일차 전체도 영향을 받는 분위기다. 올 상반기 미국과 일본산 차 수입량은 늘었지만 유일하게 독일산만 5.4% 감소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티구안과 파사트 등을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폭스바겐 판매량이 확 줄어들면서 다른 수입차 브랜드가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판매량을 늘리고 있어서다.

디젤 게이트 이후 디젤차의 배기가스 배출 실태가 적나라하게 공개돼 ‘클린 디젤’ 이미지도 산산조각났다. 디젤차 전성시대가 한계에 달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183만3786대 중 디젤차는 96만2127대로 전체의 52.5%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 들어 디젤차 비중(1~7월)은 49.7%로 50% 아래로 꺾였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