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 인더스트리4.0의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해 10월 서울 중림동 본사 다산홀에서 필립 라민 독일 인더스트리 4.0 대표(맨 왼쪽)등을 초청해 한국인더스트리4.0협회 창립총회 겸 인더스트리 4.0 포럼을 열었다.
독일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 인더스트리4.0의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해 10월 서울 중림동 본사 다산홀에서 필립 라민 독일 인더스트리 4.0 대표(맨 왼쪽)등을 초청해 한국인더스트리4.0협회 창립총회 겸 인더스트리 4.0 포럼을 열었다.
대부분 기업에 인더스트리4.0은 생소하고 막막하다. 매스컴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들은 현란하지만 여전히 구호같기만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막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시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냉정하게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기업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방법이 있긴 하다. 인더스트리4.0을 당장 5년 후에 살아남기 위한 기회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인더스트리4.0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이든, 5년 후 또는 10년 후 우리 회사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찾고 선택하라는 것이다. 우선 살아남는 기업이 돼야 한다.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기업이 돼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한경 BIZ School] '5년,10년 후 생존' 화두로 스마트공장을 보라
형편이 되는 기업들은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외부 기관에 컨설팅을 요청한다. 전문가의 특강을 듣기도 한다.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 외부 컨설팅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완성도 높은 지침을 찾기도 어렵다. 정부 지원 단체가 만든 ‘스마트공장 수준총괄도’(표1)도 참고할 만하다. 간단한 스마트공장 수준평가표다.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기업들이 그것을 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장자동화’란 항목을 보면 수작업, 실적집계 자동화, 자동집계, 제어자동화 사물인터넷(IOT)화 등의 단계로 구분해 놓았다. 실제는 ‘생산 데이터 수집’ 항목을 의미한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왜’와 ‘어떻게’란 면에서 그 다음 답을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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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평가방법 및 평가표도 있다. 기업을 도와주는 컨설턴트에게 표준적인 방법론을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다. 기업의 경영시스템부터 프로세스, 시스템 및 자동화 수준 등을 95개 항목으로 체크하는 방법이다(표2). 중소기업들이 외부컨설턴트로부터 진단을 받는 기준을 설정한 것인데, 스스로 활용하기는 어렵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용으로 적합해 보인다.

인더스트리4.0이 시작된 독일은 사정이 다르다. 대기업과 중소·중견 기업이 만나서 논의한 것이 우선 다르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명이 만나서 의견을 모았다. 특정 집단이 아닌 기계산업, 전기전자산업, 정보기술(IT)산업 대표들이 모여 오랜 기간 논의를 거친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물로 만들어 낸 것이 RAMI(Reference Architecture Model Industry)4.0 이다. 인더스트리4.0을 추진하는 데 사용하고 참고하는 모델이란 뜻이다.

이 방법이 완벽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아직 진행형이며 보완해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각 산업의 차이와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방영해 산업별 추진 방법을 세분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계산업용으로 만든 사례에서는 우리처럼 ‘스마트화’보다는 ‘디지털화’를 강조한다. 디지털화가 먼저라는 뜻일 것이다. ‘생산공정 데이터’란 추진 항목을 보면 데이터를 공정관리용으로 사용할 것인지, 기획용 또는 조정용으로 쓸 것인지, 자율용으로 쓸 것인지 그 목적에 따라 단계가 구분돼 있다. 같은 단계의 다른 항목과도 연관돼 있다.

기업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여건에 맞는 구체적인 답을 찾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노트북 한대를 사줄 때도 사양과 옵션을 따지는 것처럼 기업은 자사 제품과 서비스, 제조기반 등 구체적인 사양을 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전반적인 혁신 방향 및 사회 전체의 변화에 대한 방향성도 좋지만 기업들은 당장 5년 10년 단위로 추진해야 할 세부 추진지침 및 단계별 활동을 마련하길 원한다.

예를 들어 당장 현장에서 잘 돌아가는 오래된 장비와 설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한다. 그동안 단절돼 있던 공장과 사무실의 연결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궁금하다. 연결하는 방법이 무선인지, 유선인지도 알길 원한다. 비용관점과 기술관점이 모두 반영된 답을 원한다. 설비의 디지털화를 어떤 수준과 단계로 추진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모든 혁신 단계의 꼭대기에는 자율적 추진이 제시돼 있는데, 자율적 추진과 연결화가 과연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도 따져 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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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이런 구체적인 궁금증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없다. 그나마 있다는 전문가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 또는 자신이 다루는 영역에서만 좁게 답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전에 하던 방식과 경험을 이름만 살짝 인더스트리4.0으로 바꿔 대응해 혼란과 불신을 주기도 한다. 외국계 컨설팅 기업도 여기저기 자료를 모아 내어 놓기 바쁘며, 누구도 실제 경험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 기관의 한국인 컨설턴트도 결국은 그들의 개별 경험과 본사에서 제공하는 외국 기업 사례 한두 가지를 편집해 제안하는 식이어서 기업들이 믿고 따를 제안서는 아직 없어 보인다. 솔루션 공급 기업들의 제약은 더욱 한계를 갖는다.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중심으로 제안해야 하는 것이 근본적 제약조건으로 통합적 관점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지금 우리 기업들이 안고 있는 이슈와 문제, 도전은 어느 한쪽이 아닌 전체와 통합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을 기업들이 점차 이해하고 있다. 외부에서 답을 찾기 어렵다면 기업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시점이다.

한석희 < 한국인더스트리4.0협회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