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가 만든 화장품…신라면세점 입점
수년 전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하던 정진호 서울대 의대 피부과 교수(정진호이펙트 공동대표·사진)는 논문 300여편이 빼곡히 꽂힌 책장을 보다가 문득 ‘20년 넘게 피부 노화에 관해 연구했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결과물은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 결과를 모아 화장품을 개발해야겠다는 결심을 그때 했다.

정 교수는 피부 노화 단백질을 줄이는 물질, 탄력을 높이는 물질, 반점을 줄이는 물질 등 20여개 아이템을 선별해 국내 화장품 제조사 문을 두드렸다. 5개 시제품을 만들어 132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거쳤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주름이 7~1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효과가 가장 뛰어난 시제품을 상품으로 내놨다. 자신의 이름을 딴 학내 벤처도 차렸다. 지난 3월 정진호이펙트가 출시한 W에센스크림의 탄생 스토리다.

정 교수는 “그동안 화장품은 감성 마케팅을 바탕으로 예뻐질 것 같은 꿈을 팔았다”며 “과학적 마케팅으로 경험을 팔아 효능 화장품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정 교수가 처음 학내 벤처를 연 것은 2013년 6월이다. 그는 “화장품 제조기술을 팔려고 화장품 회사 문을 두드렸지만 터무니없이 낮은 로열티를 제시해 창업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첫 제품을 출시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3년 이피코스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등록하고 1년3개월간 용기 등을 제작해 2014년 제품을 출시했지만 유사 상표 문제로 판매가 중지됐다. 지난해 12월 사명을 정진호이펙트로 다시 제품을 내놨다. 정 교수는 “외부에서 4억원 투자를 받았지만 홍보, 마케팅은 여전히 어렵다”며 “실험실 벤처를 육성하려면 이들이 개발한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장을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호이펙트는 D바디에센스, R선스크린 등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했다. 미국 한국 중국에 특허등록도 했다. 신라면세점에 입점하는 등 판로도 넓혀가고 있다. 정 교수는 자신의 보유 지분 20%를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에 기부했다. 지난 7월에는 순이익 20%를 매년 서울대 의대 피부과학교실 연구기금으로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 교수이기 때문에 좋은 학생들과 연구할 수 있었고 학교 시설도 이용할 수 있었다”고 기부 배경을 밝혔다. 그는 “대학의 젊은 연구진이 기초연구에만 매몰되지 말고 시작 단계부터 산업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