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영국 런던의 한 가구점이 북유럽 가구를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이른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포 리빙(Scandinavian Design for Living)'이고, 이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기능성과 자연미가 인정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칼럼]'안전' 대신 '스웨덴' 선택한 볼보(Volvo)

그런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어느 특정 국가가 아니라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이 협력을 통해 이뤄낸 일종의 디자인 테마다. 이들 국가들이 손잡고 북유럽의 기능성 디자인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가구를 비롯해 다양한 제품이 북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화려함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자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기능적인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외면 받기도 했다. 그러다 1990년대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시선이 모아지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다시 떠오르는 중이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이끄는 북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 스웨덴의 역할은 매우 크다. 대표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조립 가구를 저렴하게 파는 것으로 유명한 '이케아(IKEA)' 본사가 스웨덴에 있고,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라는 의미의 '볼보(VOLVO)'도 스웨덴 태생이다. 1876년 설립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통신장비 기업으로 유명한 '에릭슨'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본사를 두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구른다'란 의미를 지닌 볼보는 1927년 학자이자 기업인 출신이었던 아사 가브리엘슨(Assar Gabrielsson)과 영국 모리스자동차의 엔진설계자였던 구스타프 라르손(Gustaf Larson)이 만나 설립한 회사다. 이들은 길고 긴 겨울을 나야 하는 북유럽 소비자를 위해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조건은 기후 극복이었다. 잦은 폭설과 긴 겨울을 나야 하는 특성에 맞춰 눈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아야 하고, 야간 주행 때 헤드램프를 보고 달려드는 덩치 큰 사슴과 부딪쳐도 견뎌야했다. 열악한 기후 조건이 '안전한 자동차 만들기'의 배경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 볼보에게 '안전(Safety)'은 하나의 철학으로 자리잡았고, 결국 슬로건도 '안전을 위한 볼보(Volvo for Safety)'가 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볼보에게 '안전'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자동차회사가 안전을 위해 다양한 장치를 개발, 적용하면서 '안전'은 볼보만의 차별점이 아닌 자동차의 기본 요건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한 볼보(Volvo for Safety)'가 '인생을 위한 볼보(Volvo for Life)'로 슬그머니 바뀐 것도 안전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전략이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랬던 볼보가 요즘에는 '메이드 바이 스웨덴(Made By Sweden)'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물론 볼보의 정식 슬로건은 아니지만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유행 흐름을 놓치기 않겠다는 판단에서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주도한 스웨덴의 좋은 국가 이미지를 볼보 제품에 접목시켜 관심을 끌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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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안전'에 관해선 양보하지 않는 제품 철학이 유지되는데, 다양한 전자장치로 안전성이 많이 확보된 만큼 이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디자인을 주도하겠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북유럽 디자인의 중심인 스웨덴을 내세워 볼보 이미지까지 끌어올린다는 얘기다. 최근 독일 자동차기업이 '메이드 바이 저먼(Made by German)'을 내세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요즘 자동차업계에선 '메이드 바이 스웨덴'과 '메이드 바이 저먼'을 대결적으로 바라보는 구도가 적지 않다. 스웨덴과 독일, 어느 국가의 이미지가 더 좋을까?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와 '기계공업의 산실'이 전부이니 판단이 어렵기는 하다. 독일 디자인과 스웨덴 디자인 모두 높이 평가받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래서 볼보의 스웨덴 선택은 말 그대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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