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최악의 하루’ 포스터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최악의 하루’ 포스터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사랑은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누구나 마음 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며, 사랑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사랑을 꿈꾸는 존재가 사람이다. 하지만 사랑과 ‘진짜’는 양립할 수 있는 걸까. 언제나 사랑하는 이에게 솔직했지만 그것이 곧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영화 ‘최악의 하루'(감독 김종관)의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최악의 하루’는 곤경에 처하게 된 여자 은희(한예리)의 어떤 하루다. 어느 여름날 은희의 하루에는 지금 만나는 남자 현오(권율), 전에 만났던 남자 운철(이희준), 처음 본 남자 료헤이(이와세 료)가 등장한다. 남자친구 현오는 은희 앞에서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고, 운철은 은희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지만 ‘행복해지지 않기 위해’ 아내와 헤어지지는 않는 희대의 발암 캐릭터다. 그래도 은희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한다. 다만 모든 것을 밝히지 않은 채로. 그렇게 최선을 다했지만 마치 신이 은희의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은 꼬이기 시작하며 중·후반부에 이르러 방점을 찍는다.

얽히고 설킨 상황 속에서도 김종관 감독은 그간 작품을 통해 보여줘 왔던 사랑의 미세한 떨림, 그 순수한 감정들의 교류를 여름날의 정경과 함께 담아냈다. 이번에는 코미디적 재미까지 선사해 더욱 반갑다. 흐드러진 여름 네 남녀가 주고 받는 눈빛과 추억에 설레다가도, 현오와 운철의 대사에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러 온 소설가 료헤이가 맞닥뜨리는 상황들 또한 짠하게 다가와 웃음을 짓게 만든다.

영화 ‘최악의 하루’ 스틸컷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최악의 하루’ 스틸컷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김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공간으로도 확장했다. 서촌의 뒷골목과 남산의 산책로가 그 주인공이다. 그만의 눈길로 다시 바라 본 서촌 골목 구석구석의 벽들, 적지 않은 시간을 버티고 버티고 있었던 그 벽들에 생긴 구멍, 그 구멍을 통해 비치는 바깥 세계는 영화 속에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간 보아왔던 서울과는 조금 낯선 얼굴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지금까지 알고 지냈던 도시의 다른 풍경을 보는 재미가 이 영화의 놓칠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이처럼 섬세한 스케치의 절정을 이루는 것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은희와 료헤이의 산책 장면이다. 마치 료헤이의 꿈 속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둘은 대화를 이어간다. 은희는 그때서야 료헤이에게 자신은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은희의 하루에 등장하는 세 남자 중에서 ‘거짓말에 관한 진심’을 꺼내놓은 남자는 료헤이가 처음이다. 그런 은희에게 료헤이 또한 자신도 처음으로 떠올린 해피엔딩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라며 은희를 안심시키는 료헤이의 말처럼,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은희는 계절이 바뀌면 다시 최고의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까. 많은 여운과 물음표를 남기며 ‘최악의 하루’는 끝이 난다. 어른들의 마음을 훔칠 동화 같은 영화다. 25일(오늘) 개봉.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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