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호열자(虎列刺)
“평양성 안팎에서 지난 그믐 무렵에 갑자기 괴질이 돌아 사람들이 설사구토를 하고 근육이 비틀리다가 순식간에 죽어버렸습니다. 열흘 만에 1000여 명이 죽었으나 치료할 약과 방책이 없습니다.”

조선 순조 21년(1821년) 8월13일, 평안도에서 날아든 장계의 일부다. 임금은 괴질을 하늘의 꾸짖음으로 보고 죄수를 풀어주는 등 천심 달래기에 골몰했다. 백성들은 귀신을 쫓는다는 처용 그림을 붙이거나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복숭아 가지를 문에 걸었다. 전근대 우리 의료생활사의 한 풍경이다.

사람들은 이 괴질을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렀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으로 읽히지만, 알고보면 콜레라의 중국 표기인 호열랄(虎列剌)을 음역하는 과정에서 랄(剌)자를 자(刺)자로 혼동한 것에 불과하다. 고종 32년(1895년)에도 전국적으로 수천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평양에서만 500여명이 숨졌다. 조정이 ‘호열자 소독규칙’을 공포하는 등 난리를 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1902년 펴낸 최초의 전염병 예방서도 소용이 없었다.

1919년에 1만6915명이 감염돼 1만1084명이 죽었다. 이듬해에도 약 2만명이 희생됐다. 1946년에는 귀환동포 3150명을 태우고 온 중국 수송선에서 환자가 발생해 1주일간 항구에 들이지 않고 소독했으나 끝내 막지 못했다. 이때 환자 5만7000여명 중 3만6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적인 대유행은 1817년 인도에서 시작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체로 퍼져나갔다. 흑사병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전염병이 콜레라다. 1854년 영국 런던에서는 열흘 만에 반경 200m 이내의 주민 500여명이 몰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콜레라는 공기로 전염된다는 독기설(毒氣說)을 믿었다. 그런데 영국 의사 존 스노는 공기가 아니라 물에 주목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현장으로 들어간 그는 곧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희생자들이 오염된 공용 우물물을 함께 마셨던 것이다. 이후 런던 시내에 상·하수도가 완비됐고, 공중위생법도 생겼다.

지구를 휩쓴 이 괴질은 1884년 독일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콜레라균을 규명한 뒤에야 잦아들었다. 우리나라에선 2001년 162명의 환자가 발생한 뒤 잠잠했는데, 엊그제 광주에서 50대 남성 환자가 발견됐다. 감염 영향권을 중심으로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학교 식중독 사태가 겹쳤다. 늦더위까지 기승이다. 뭐든 익혀먹고, 손을 자주 씻는 수밖에 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