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김태형 연출/사진제공=스토리피
김태형 연출/사진제공=스토리피
김태형 연출은 2014년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를 만났다. 공연을 관람하는 한 관객의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고, 이 신선함을 대한민국 관객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국내 초연을 빠르게 추진했다. 2015년, 마침내 초연을 올렸고 올해 재연에도 성공했다. 세 명의 배우로 구성된 초연팀(이석준·김지현·윤나무)과 새롭게 합류한 배수빈·임강희·신성민을 더해 한층 강렬하고 탄탄하게 돌아왔다.

하나의 공연이지만 전혀 다른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현된 ‘카포네 트릴로지’. 로키, 루시퍼, 빈디치로 이뤄져 있는데, 세 배우는 각각 올드맨·레이디·영맨으로 1인 다역을 소화한다. 초연 당시 ‘형식을 파괴하는 옴니버스 연극’으로 호평을 얻었고, 배우와의 거리가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무대의 신선함이 재미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김태형 연출은 새로운 것을 찾으며, 또 ‘잘’하기 위해 애쓴다. 어느 관객에게는 이 작품이 생애 첫 공연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10.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카포네 트릴로지’를 올렸다. 재연 준비는 언제부터 했나.
김태형 : 초연을 올리고 당연히 재연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준비도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굉장히 오래된 거지. 캐스팅 준비를 마치고 지난해 연말부터 준비를 했다.

10. 재연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아쉬움도 보완해야할 테고.
김태형 : 늘 부담은 있다. 초연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하고 싶은 부분, 아쉬움을 보완하자는 욕심도 있었다. 초연을 좋아해서 기대하고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확 바꿔버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항상 두 가지의 딜레마에 빠진다. 초연에서 좋았던 것들이 달라지면 기존 관객들이 싫어하니까, 재연은 그 부분이 고민되는 지점이다. 이번 ‘카포네 트릴로지’의 경우에는 한 팀은 그대로 가고, 한팀만 새롭게 뽑아서 진행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조금씩 변화를 줬다. 새 배우들과 연습할 때는 새로운 기분이 들어서 좋았고, 전에 했던 팀이 투입되면서는 전에 유지했던 기본적인 내용들이 공유돼 조화가 잘 맞았다. 새로운 팀은 다른 방향으로 갔고, 기존 팀은 원숙하고 더 유연하게 깊어져 공연을 하고 있다.

10. 캐스팅의 고민도 컸겠다.
김태형 : 고민을 많이 했다. 초연 팀의 이석준, 윤나무, 김지현이 잘 해줬는데 똑같은 표현을 변화 없이 올리기에는 아쉬웠다. 그래서 작정하고 한 팀은 새롭게 가자고 했다. 일종의 모험 같은, 그런 것도 있었다.

10. 특히 배수빈의 출연이 신선했다.
김태형 : 배수빈의 캐스팅은 오래전부터 낙점돼 있었다. 이석준이 맡은 올드맨 역이 의외로 캐스팅하기 쉽지가 않다. 연령도 그렇고, 찾아보니 폭이 넓지가 않더라. 지이선 작가가 ‘킬 미 나우’로 호흡을 맞춘 배수빈을 추천했다. 그리고 영맨 역의 신성민은 공연을 보기도 했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터라 캐스팅했다. 여배우도 고민이 많았는데 고민 끝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았다.

10. 공연의 반환점을 돈 지금,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나.
김태형 : 쉽지 않았을 텐데 다들 따라 한다는 느낌을 벗고 새로운 느낌으로 해주고 있어서 만족한다. 어떤 부분은 기존 배우들이 했던 노하우를 가져오면서 진행하고 있다. 객석과의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배우들이 공포스럽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관객과 같이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10. 배우들의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 같은데, 대화를 많이 하겠다.
김태형 : 견디기 위해서 대화도 많이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푸는 거다. 나에게도 연출로서의 성과를 떠나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10. 영국의 페스티벌에서 ‘카포네 트릴로지’를 봤다고 들었다. 어떤 점이 끌려서 국내 초연을 성사시켰나.
김태형 : 영국의 페스티벌에서 극장 3000개가 마련됐다. 일상의 작은 공간까지 극장이 되는 거다. 강의실, 호텔방, 카페 등을 개조하고 쪼개서 쓰는건데, 교회의 강당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학교 강의실 같은 느낌도 많았다. 게다가 한 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팀이 나눠쓴다. 이런 식으로 여러 공연들이 올라간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공연은 많았는데, 무대와 조명 등이 철저하게 그 공연에 맞춰 있는 작품은 찾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런데 ‘카포네 트릴로지’의 경우에는 완벽하게 극장이 세팅돼 있는 거다. 강의실 같은 빈 공간과 벽과 문, 객석 조금. 거기서 세 편의 공연이 진행됐다. 극장이 작긴 하지만 조명과 음향이 디테일해지고 다른 공연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느낌을 받았다. 또 한 공간에서 세 가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는게 매력적이었다. 그 공간이 리얼리티를 갖고 꾸며져 있는 것이 흥미진진했다. 당시에는 루시퍼만 봤는데, 명백한 하나의 기억때문에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10. 명백한 기억은 무엇인가.
김태형 : 객석이 적었다. 60석 정도가 마주 보고 있는 식이니, 관객들의 표정이 자세하게 보이지 않나. 그게 굉장히 흥미로운 거다. 루시퍼의 격투신이 끝나고 박수를 보내고 있는 한 남성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놀라워하면서도 신난 표정을 반대편에서 보며, 이 기쁨과 놀라움을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거다. 제작사 대표에게 하자고 졸랐다.(웃음)

김태형 연출/사진제공=스토리피
김태형 연출/사진제공=스토리피

10. 한국에 올리기로 하고, 공연을 준비하면서는 마음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웃음)

김태형 : 대본을 꼼꼼히 뜯어봤더니, 좋은데 아쉬운 점이 있더라. 기획은 훌륭한데, 거기는 페스티벌이라 용서되는 지점이 분명 있었다. 모든 관객들이 긍정적으로 호감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공연을 보는 거니까, 좋은 평가를 받는 거지. 하지만 국내에서 정식으로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완성도를 높여야 했다. 무대 사이즈, 사용되는 도구, 음향, 의상, 여러 가지에 투자를 많이 해야 했다. 기본적인 질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좁은 공간 안에 들어와서 보는 거라 싸구려로 할 수도 없더라.(웃음) 처음엔 플라스틱 총을 썼는데, 객석과 거리가 가까우니 안되겠더라. 의상도 마찬가지고.

10. 연출로서는 어떤 부분에 힘을 줬나.
김태형 : 지이선 작가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줬다. 관통하는 상징을 은유적으로 묶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친구다. 빨간 풍선을 오브제로 삼아 상징을 부여하고, 큰 상징을 통해 변주될 수 있도록 연광성을 갖고 재미있게 엮었다. 원작에서는 똑같은 대사의 활용은 없었지만, 관객들이 세 가지 공연을 다 볼 거라고 예상하고 캐릭터와 대사 등을 조금 더 얽힐 수 있도록 구성했다. ‘대한민국에서 의미를 갖고 공연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나와 지이선 작가의 고민이었다. 의미 있게 서지 않으면 흥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애를 썼다.

10. 작가와의 소통도 중요했겠다.
김태형 : 알고 지낸지는 15년, 같이 작업을 한지는 10년이 됐다. 같은 학교 극작과 선배다. 밤새 회의하고 엄청 싸우기도 했다. 굉장히 성향이 다른 캐릭터인데, 10년 가까운 세월을 계속 만나고 작업하면서 친구가 됐다. 동료이자, 친구이자, 또 한편으론 경쟁자이기도 하고. 지이선 작가와는 험한 시간, 험한 꼴을 많이 본 사이다.(웃음) ‘카포네 트릴로지’를 할 때도 여러 가지 사건이 많았다. 긴 시간 대화를 했다. 싸우기도 하면서. 하지만 기본적으로 결과물을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다.

10. 치열하게 싸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또 ‘공연’의 재미 아닌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고.
김태형 : 사실 가장 재미있는 건 연습실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극장에 올라가서 관객과 만나는 순간도 흥미진진하고 쾌감을 느끼지만, 그전에 회의할 때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토론 끝에 결과물이 나왔을 때, 기억할 만한 순간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쌓여서 공연이 올라가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을 할 때 그 어떤 것보다 흥미롭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 때문에 놓지 못하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10.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인가.
김태형 : 기본적으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평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가 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이후 어떤 스타일로 풀어낼 것인지를 떠올린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사회적인 의미가 닿아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계속 발전하고 날카로워져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10. 처음 연출을 시작했을 때와 현실과 마주한 지금, 이질감이 있을 텐데.
김태형 : 예술을 하고 싶고, 또 사회에 내고 싶은 목소리가 있어서 연극을 시작했다. 연극이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재미있고 신나는 작업이었다. 물론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면서 달라지긴 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선명한 뭔가를 안겨야 하고, 돌아갈 때 하나라도 갖고 가야 할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거다. 노력해야 한다는 걸 배웠고, 그렇게 하도록 최선을 다한다. 막상 공연을 해보니 부딪히는 것들이 많더라. 제작 과정에서 배우들과 또 관객들에게 부딪히고, 스스로 자기 검염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10. 연출가로서 공연계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숙제이기도 할 테고.
김태형 : 연극, 뮤지컬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있어 한편으론 아쉽다. 그래서 집중된 관객들에게 더 잘, 흥미롭게 만들어보자는 도전의식이 생기기도 하고. 예술에 대한 교육의 문제인 것 같다. 우리는 미술과 공연, 무용 등을 관람하는 것을 교육받은 적이 없다. 훈련이 돼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연극과 뮤지컬도 많이 활발해지면 좋겠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 많이 활발해졌지만 말이다.

10. 그럴수록 더 신념은 확고해지겠지.
김태형 : 장진 선배가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잘 해야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늘의 관객이 좋은 기억을 갖고 또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인데, 처음 연극을 보러 온 관객이 크게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굳이 또 찾지 않으니까. 늘 그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이 작품이 인생 최초의 관극 경험을 수 있다. 앞으로 공연을 접하는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오늘 이 관객이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다.

10. 직업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하겠다.
김태형 : 잠꼬대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느끼고, 공연을 하는 꿈이나 연습하는 꿈을 꾼다.(웃음) 예전에는 취미 활동을 하려고 애를 썼다. 건담을 만들기도 하고 만화책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스트레스가 진짜로 풀리는 건 아니더라. 공연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는 일이 잘 해결돼야 풀린다. 공연은 공연으로.

10. 연출의 길을 후회한 적은 없나.
김태형 : 이 길을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은 없다. 스트레스를 받고, 성질이 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일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여전히 흥미롭다.

10. 어느덧 연출자로 산지 10년이 됐다. 달라진 점이 있나.
김태형 : 힘을 갖고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되어 그때 힘 있게 메시지를 던지자고 스스로 타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든지 한방에 훅 던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내가 살아온 발자취, 삶 자체로도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또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씩 모여서 힘이 된다. 예전에는 크게 한방 던지는 혁명을 꿈꾸기도 했다. 포기한 것이 아니라, 관객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씨앗을 심어주는 게 내 역할인 것 같다.

10. 10주년을 맞이하며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김태형 : 올해로 10주년이 되는 건데 어쨌든 전문가로, 또 한 영역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년에는 그동안 작업한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욕심을 부린다면, 그동안 해온 작품 중에 아쉬운 건 한번 더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번쯤은 직접 써서 공연을 만들고 싶은데, 계획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웃음)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음…2, 3년 안에는 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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