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장기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등 국가 장기전략을 세우고 고민하는 주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어제부터 한경이 시작한 ‘대한민국 국가 브레인이 없다’ 시리즈에 따르면 정부, 중앙은행, 국책 및 민간 연구소 그 누구도 장기전략이나 목표를 얘기하지 않고 있다. 과거 정부 주도로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국책 및 민간 연구소가 경쟁적으로 전략을 제시하고 연구하던 풍토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흐름은 우리사회에서 민주화가 진행된 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이제 국가의 목표는 어떤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면 집권당의 비전과 공약이 국가발전 목표가 되는 식이다. 그럼에도 국가 비전 자체가 전혀 필요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저성장과 저출산, 고령화 등 미래를 좌우할 과제가 산적한데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이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정부 주도는 아니더라도 민관 모두에서 이런 문제를 둘러싸고 자유로운 진단과 전망이 나오며 해결책을 놓고 활발한 의견 개진도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정치다. 정치의 입김과 영향력이 너무나 세지면서 관료도, 각종 연구소의 전문가들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말할 자유는 정치인에게만 있을 뿐 자칫 정치적 논쟁이나 부르게 되지 않을지를 걱정하는 것이 지금의 사회 풍조다. 정치도 그렇다. 장기적 가치보다는 집권과 당선을 목표로 하는, 아마추어 수준의 아이디어들이 난무하게 된다. 그렇게 정책 주도권이 정치로 넘어가면서 대학도 지식인도 국책 연구소도 목소리를 잃고 있다.

민간 연구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2년부터 성장률, 물가 등 거시경제 전망을 하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괜히 분란의 소지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에조차 정치권은 물론 일부 언론까지 가세해 압력을 행사하는 마당이다. 이런 식이니 아무도 소신을 갖고 국가의 목표나 비전을 말하지 않는다. 정치가 국가의 두뇌마저 마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