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안정적 기반' 강한 기업일수록 혁신에 더 강하다
시대를 초월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 영어로 ‘올 타임 페이버릿(all time favorite)’이라는 표현을 쓴다. 경영 컨설팅에서 시대를 불변하고 가장 각광받는 주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혁신’이라고 답할 것이다.

20년 가까이 한국 경영 컨설팅 현장에 몸 담으며 많은 최고경영자(CEO)와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들에게 ‘혁신’만큼이나 식상하지만 관심 있는 주제도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경영자들은 정체하는 기업은 결국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맥킨지가 최근 10년 동안 세계 4000여개 기업을 연구한 것에 따르면 모든 산업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는 시간에 따라 크게 변해왔다. 예를 들어 글로벌 무선통신 산업의 가치창출 순위는 89위에서 8위로 급등한 반면, 통합 에너지 산업은 같은 기간 2위에서 127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혁신에 성공하는 회사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맥킨지가 최근 3000여명의 경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혁신 설문조사 결과 많은 기업이 혁신센터, 사업개발팀, 인큐베이터, 기술연구팀 등의 조직을 구축하고 혁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이런 노력의 3분의 1만이 가시적 효과를 보고 있다.

변화에 민첩하고 혁신적인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조직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맥킨지가 글로벌 기업 건강도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혁신적인 기업은 ‘역동적인 역량(dynamic capability)’과 함께 ‘안정적 기반(stable backbone)’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역동적 역량’이 강한 기업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통에 개방적이고 외부의 아이디어를 적극 포착해 사내 지식 공유가 활발하다. ‘안정적 기반’이 강한 조직은 구성원들 사이에 명확한 책임과 권한을 설정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체계적으로 정립해 명확한 실행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역동적 역량’이 뜀박질을 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근육이라면 ‘안정적 기반’은 튼튼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뼈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국내의 많은 CEO가 놀란 것은 바로 ‘안정적 기반’이 강할수록 혁신에 더 강했다는 사실이다. 그 좋은 사례가 바로 필립스다. 필립스는 ‘I2M’(Idea to Market, 아이디어에서 시장으로), ‘M2O’(Market to Order, 시장에서 판매로), ‘O2C’(Order to Cash, 판매에서 이익으로)의 3대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복잡하던 사업구조를 4개의 사업모델로 정리했고, 작업 프로세스의 80%를 표준화했으며, 부서 간 장벽을 제거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사업 운영 모델을 기반으로 각 시장에 특화한 제품을 판매하는 혁신 활동에 성공했다.

국내 기업들도 혁신적 기업이 되기 위해 기술 개발과 인재 채용 등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안정적 기반’을 갖추는 것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혁신에 강한 기업이란 △업무가 명확히 정의돼 있고 △결과뿐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하고 △개인기가 아니라 조직적 노하우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이다.

기업들이 ‘안정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과학적 업무 정의와 일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많은 기업에서 개별 보직에 대해 역할, 책임 및 권한이 명확하지 않고 직원들은 상사의 지시를 잘 수행해야 일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게 현실이다. 둘째, 글로벌 시장에서 남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사업 운영상의 차별점을 개발하고 강화해야 한다. △차별적 기술력에 근거한 제품 개발 △품질, 비용, 납기에 대한 운영 혁신 △고객과 시장에 대한 탁월한 관리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셋째, 혁신 활동을 추진하고 이를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시켜 조직의 자신감을 쌓아야 한다. 작은 성과라도 조직의 DNA에 ‘성공의 경험’으로 새겨질 때 향후 더 큰 혁신을 일으킬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최원식 <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