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한민국이 외면한 순국선열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한편에 들어서면 ‘현충사’라는 한글 현판이 붙은 건물이 나온다. 대부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떠올린다. 이곳은 일제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순국열사 2835명을 모신 위패 봉안관이다.

순국선열 후손들의 모임인 순국선열유족회(유족회)가 관리하는 현충사는 1997년 지어졌다. 시민들에게 공개된 때는 2014년부터다. 김시명 유족회장과 일부 회원들이 사재(私財)를 털어 관리 직원과 해설자를 고용하면서 겨우 운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현충사 운영비로 지원하는 예산은 매년 순국선열의 날(11월17일) 행사비를 합쳐도 5000만원 남짓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순국선열이 1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위패가 봉안된 순국선열은 2835명에 불과하다. 현충사 규모는 일본 야스쿠니신사나 대만 충렬사 등 이웃 나라 유공자 사당과 비교해 5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자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8월 뒤늦게서야 이 곳에 ‘독립의 전당’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순국선열 후손들에 대한 지원은 말할 것도 없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후손의 80%가 고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을 갖고 있으며 60%는 수입이 없다. 사재를 들여 독립운동을 한 데다 남은 재산마저 일제에 강탈당한 탓이다. 보훈급여금을 받는 순국선열 후손들은 600여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매월 100만원도 받지 못한다.

1981년 설립된 유족회는 아직까지 정부 지원을 받는 법정 보훈단체로 지정받지 못하고 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낸 회비가 유일한 수입원인 이유다. 정부는 광복회 등 다른 보훈단체를 의식해 유족회를 보훈단체로 지정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과거 광복회에 통합돼 있던 유족회는 “순국선열보다는 생존한 애국지사 및 후손에 지원이 집중된다”며 광복회를 탈퇴했다.

광복을 맞은 지 올해로 71년이 됐지만 정작 정부는 순국선열과 그 후손들을 외면하고 있다.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을 외면하는 나라를 어떻게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유족회원들의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