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EV i3를 글로벌 시장에 내놓은 것은 2013년이다. 탄소복합소재로 무거운 철 소재를 대신하고, 64Ah의 충전용량을 갖춘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한국 기준으로 최장 132㎞를 주행하는 수준이었다. BMW로선 먼저 단거리 EV를 내놓고 추가로 더 많은 주행을 원할 때 '주행거리 연장 옵션', 즉 레인지 익스텐더를 마련하며 EV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승]전기로만 300㎞, BMW i3 94Ah를 타다

이렇게 i3가 프리미엄 EV 제품으로 등장하자 소비자들은 적지 않은 관심을 표명했다. 출시 이후 글로벌 판매가 3만대를 넘기며 승승장구했다.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가정용 충전박스를 지원하고, 충전 인프라가 확대되는 유럽과 미국 내 도시를 공략해 'i' 브랜드의 입지를 구축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선 가장 먼저 EV에 뛰어든 BMW의 전략이 어느 정도 시장에 먹혀 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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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장거리를 향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계속됐다. 그러자 정확히 3년 후 장거리 EV로 i3 94Ah 버전을 내놨다. 기존의 60Ah에서 배터리 용량을 늘린 제품이다. 내연기관으로 비유하면 연료탱크를 키워 보다 많은 에너지(전기)를 배터리에 담은 셈이고, 덕분에 주행 가능한 거리가 증가했다. 한 마디로 단거리 EV가 소비자들의 EV 접근 장벽을 어느 정도 제거했다면 이제는 장거리 EV를 통해 내연기관을 대신하는 쪽으로 한발 들어가겠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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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략은 쉽게 읽혀진다. BMW는 i3 94Ah 제품의 핵심 개발 과제로 고밀도 배터리를 선정하고, 3년 동안 배터리 밀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지난 5일 독일 뮌헨 인근에 위치한 BMW 딩골핑 공장에선 그간의 개발 과정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먼저 'EDS(Electronic Drive System)'로 부르는 EV의 동력계를 모듈 방식으로 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듈의 무게 변동 없이 배터리 용량을 키우는 작업이다. i3에 새로 탑재한 94Ah 고전압 배터리의 경우 이전과 동일한 크기에 기존보다 50% 많은 전력 소재(리튬)를 더 넣었다. 다시 말해 에너지밀도를 높여 주행거리를 늘린 셈이다. 이를 위해 리튬을 원자 크기의 차원에서 직접 연구했다는 게 피터 랄프 BMW R&D 고전압 배터리 개발 담당의 말이다. 그는 "i3에는 96개의 셀이 들어 있는데, 8~12개씩 모듈로 제작해 60~94Ah의 용량을 발휘하게 된다"며 "배터리 셀의 숫자는 동일하지만 소재의 밀도 차이로 주행거리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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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게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방(cell) 안에 소재가 밀집돼 있으니 당연히 증가했다. 새로운 배터리 탑재로 이전보다 차의 중량이 50㎏ 증가한 것. 경량화를 통해 1㎞라도 주행 거리를 늘려야 하는 EV에서 무게 증가는 당연히 부담이다. 하지만 BMW가 주목한 것은 중량 부담이 아닌 성능과 주행 가능 거리의 적절성이다. 성능 손해 없이 배터리 밀도 향상으로 주행거리를 늘린다면 BMW의 제품 철학인 '역동성'이 지켜진다고 판단했다. 하인리히 슈바호퍼 i3 제품개발 담당은 "i3 94Ah 제품을 찾는 84%가 신규로 EV에 진입하는 소비층"이라며 "이들은 주행거리 연장과 성능을 모두 원하는 소비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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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고속도 부담 없어
이 같은 설명과 기본 사항을 파악한 뒤 i3 94Ah에 올랐다. 물론 2013년 경험했던 i3 60Ah와 디자인 및 인테리어는 거의 똑같다. 속도를 높이면 EV 특유의 최대토크가 곧바로 발휘되며 순식간에 속도를 높인다. 제한시속 80㎞가 무색할 만큼 빠르게 높이는 속도는 BMW의 '역동성' 유지 노력을 증명한다. 그리고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만으로도 감속이 쉽게 경험된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BMW는 i3의 주행거리 확대를 위해 가급적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도록 설계했다. 따라서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속도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것처럼 줄어드는데,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쉽게 적응된다. 오히려 익숙해지면 멈춰야 할 거리를 운전자 스스로 계산해 페달에서 발을 떼게 된다.
[시승]전기로만 300㎞, BMW i3 94Ah를 타다

시승은 국도와 고속도로에서 이루어졌지만 200㎞ 이상 구간은 아니다. 대략 70㎞ 정도의 거리에서 이뤄진 짧은 구간이었지만 저속, 중속, 고속을 경험하기엔 충분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은 고속이다. 물론 페달을 얼마나 밟느냐에 따라 내연기관과 마찬가지로 전력을 많이 소비하지만 EV의 역동적인 움직임 자체는 소비자들의 긍정적 평가를 끌어낼 요소로 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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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승차감은 편안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스포츠 모드를 활용할 수 있지만 EV 운전자의 대부분이 도심 이용자라는 측면에서 편안함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핸들링은 여전히 날카롭다. BMW 특유의 핸들링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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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경험은 시승이라기보다 i3에 94Ah 버전을 더했다는 점에서 보다 많은 의미가 있다. BMW에 있어 'i'는 미래 생존 먹거리다. 하지만 아직 EV 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만큼 단계별 접근이 필요했고, 2단계가 바로 장거리 EV다. 더불어 제 아무리 제품이 뛰어나도 소비자가 이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고, 그러자면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자의 편리함을 만들어줘야 하기에 i3 94Ah에는 3상 충전이 가능한 기능도 넣었다. 가뜩이나 글로벌 인프라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충전기마저 국가별, 제조사별로 구분돼 사용이 어렵다면 각 나라의 충전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제조사가 혼용 충전 방식을 택해 소비자 사용을 돕겠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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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의미로 '나우(NOW)' 서비스도 한창이다. 신용카드 등을 자동차에 등록해 놓으면 유럽 내 계약된 여러 나라의 공공 주차장은 물론 사설 주차장도 후불 결제를 통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충전도 마찬가지다. 이용자의 번거로움을 최대한 줄여 사용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EV가 극복해야 할 짧은 주행거리는 배터리 소재의 밀도 높이기로 해결하고, 부족한 충전망은 충전방식의 혼용으로 극복하며, 도심 내 사용자의 편리성을 위해선 커넥티드를 활용한 결제 서비스 등으로 만족시키겠다는 얘기다. 단순한 제품 제조에 그치는 게 아니라 EV 사용자의 생활 속으로 기업이 직접 뛰어들어 불편함을 해소해 시장을 키우는 방식이 바로 BMW 'i' 브랜드의 전략인 셈이다. 나아가 제조 측면에서도 초기 외부로부터 공급받았던 배터리셀 등 핵심기술 모두는 BMW가 직접 주도한다. 토요타가 움직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것처럼 BMW도 자체 개발을 통해 시장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행보로 풀이돼서다. 한 마디로 제품력의 확대, 사용자의 편의성 증대, 그리고 주력 기술의 내재화로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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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도는 개발 담당도 인정한다. 슈버호퍼 개발 담당은 "2040년이면 e모빌리티 시장이 내연기관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BMW 그룹 내에서 'i' 제품은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덧붙였다. 여러 다양한 e모빌리티 시대를 'i'로 미리 대비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100년 이상 연장시킨다는 얘기다.

그래서 BMW는 테슬라 등의 행보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BMW 'i' 관계자에게 테슬라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BMW는 테슬라에 전혀 관심이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말이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선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많은 투자와 이해적 요소가 반영돼야 하지만 테슬라는 그렇지 못하고 있음을 애둘러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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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3 94Ah 제품 이후 BMW의 행보는 명확하다. 주행거리를 더 늘리기 위해 배터리의 소재 밀도 개선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피터 랄프 배터리 담당은 "2025년까지 리튬 배터리의 밀도는 계속 높아지고, 비용은 떨어질 것"이라며 "하지만 전극 소재를 활성화시키는 물질의 가격이 비싼 만큼 소재의 활용성을 높이는데 주력하되 리튬을 대체하는 다른 물질 발굴에도 나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BMW가 내다보는 미래는 e모빌리티의 주도권이다. IT 기업이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의 자동차 시장을 노리는 것 자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각인시킨다는 의미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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