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영란 법', 기존 법 집행 가로막는 과잉입법
국회에서 의결되자마자 위헌 심판 대상이 된 법률이 있다. 이 법은 시행도 되기 전에 여러 개의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기미다. 헌정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력의 이 법률을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하고 씁쓸하다.

이 법률의 이름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소위 ‘김영란법’인데 국회 제출 원안이 입법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변색돼 그런 호칭은 부당하다. 호칭 사기이며 명예훼손일 수도 있다.

지난달 말 헌법재판소는 이 법률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17개월 만이다. 헌재 판단이 내려지면 첨예한 분쟁은 가라앉기 마련인데, 이 법에 관한 한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가열되고 있다. 기존의 논란에 헌재의 합헌 결정 사유에 대한 시비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헌재의 합헌 논증이 다수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입법의 필요성과 최소침해성, 법익균형성 등을 판단하기 위해 장중한 법언어가 동원됐지만 법리적 논증은 탄탄치 못했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함을 강조하던 헌재였다. 물론 헌재는 이 법률이 위헌이 아니라고 했지 흠 하나 없이 완벽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것은 논증이 아니라 판단을 회피한 것이니, 국민은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조차 앞다퉈 이 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 우리를 어리둥절케 한다. 입법 과정을 추적해 보면 국회의원들의 가벼운 변신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20개월이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법안 심사를 위한 모든 조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불성실한 입법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 법률은 헌재 판단을 받을 이유도 없었다. 부실한 줄 알고 입법한 국회가 스스로 폐지했거나 개정했으면 될 일이었다. 결국은 헌재에서 다시 공을 되돌려 받았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헌재도 부실한 심리의 논란을 비켜 가기는 어렵다. 국회와 헌재 간의 핑퐁게임으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실한 입법과 회피성 결정으로 인한 혼란은 결국 국민이 지게 된다. 하지 않아도 될 논쟁의 앙금 또한 국민의 몫이다. 국회 입법 과정과 헌재 결정 과정은 소상히 기록됐으므로 두고두고 연구될 것이다.

허다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법률은 애초 탄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부정부패 척결 취지와 입법 문제를 국회가 구별했어야 했다. 이 법률의 제정 이유를 보면 ‘공직자의 부패·비리사건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서라고 했지만 납득할 수 없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는 법규범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헌법에서부터 법률, 명령을 거쳐 지방자치단체마다 규칙과 조례 등으로 세세히 정해 모세혈관과 같이 온 나라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부패의 만연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법이 집행되지 않아서인 것이다. 만연한 부패는 실상 만연한 미집행, 즉 법집행 기관의 관행적 부작위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입법이 아니라 기존의 법을 성실히 해석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미집행 관행을 도외시한 채 만든 법은 불필요한 중복 입법으로 그 운명 또한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입법의 기초는 그 필요성에 있다. 이 법률처럼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입법은 집행 부작위의 책임 은폐를 정치적 성실성으로 포장한 교묘하고 비겁한 정치적 상징 입법이다. 게다가 이 법률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필요 없이 지나친 간섭을 담은 과잉 입법이기도 하다. 과도한 입법은 그 상징과 달리 법의 집행을 가로막을 뿐이다.

윤용규 <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