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토마토=이탈리아, 와인=프랑스…왜?
식문화(食文化)는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식재료를 생산하고, 이를 저장가공해 조리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나누는지를 모두 포괄한다. 따라서 식문화는 단순한 영양 섭취의 의미를 넘어 한 사회가 형성해온 생활방식이나 문화에 버금가는, 국가와 민족을 대변하는 정체성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정체성은 토마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평가받는 피자와 파스타는 토마토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토마토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가 이탈리아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토마토=이탈리아, 와인=프랑스…왜?
이탈리아와 토마토는 불가분의 관계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식재료로써 토마토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인들이 처음 토마토를 접한 것은 16세기의 일로, 당시 식민지 건설에 나선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토마토를 이탈리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마저도 도입 초기에는 토마토의 못생긴 외모 탓에 독이 있는 식물로 오해받아 주로 관상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중 17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에서 토마토를 활용한 요리법이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식재료로써 토마토의 명성이 시작되었다.

나폴리는 세계 최고의 토마토로 평가받는 ‘산 마르자노’의 산지로, 지금도 이탈리아 토마토 문화의 중심에 서있다. 17세기부터 서서히 장식용이 아닌 식용으로 쓰이기 시작한 토마토는 18세기 이후 다양한 요리법의 발견에 힘입어 이탈리아를 넘어 전 유럽의 식탁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특히 19세기 들어 파스타의 소스로 토마토가 사용되고, 토마토가 올라간 ‘마르게리타 피자’가 인기를 끌면서 토마토는 이탈리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이처럼 토마토는 지난 수백 년간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무역, 이웃나라와의 역사적 관계, 종교 및 사회적 변화 등 다양한 요소와 결합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이탈리아 음식의 국제적 명성과 세계 각국에 진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노력이 어우러져 이탈리아 요리에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문화 영토가 점점 더 확대되는 상황이다. 한편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2년 ‘세계 10대 슈퍼 푸드’를 선정하면서 토마토를 그중 하나로 꼽았다. 토마토를 적절히 요리해 먹으면 무병장수할 수 있으므로 섭취를 적극 권장한 것이다. 실제로 토마토에 들어 있는 리코펜 성분은 질병과 노화의 촉진을 억제하고 항암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토마토는 폐 기능을 향상시켜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 데 뛰어나며, 고혈압과 동맥경화에도 효과적이다.

이 밖에도 육류를 많이 섭취하면 몸이 산성화돼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데, 알칼리성 식품인 토마토는 몸의 산성화를 중화하는 데 탁월하다. 육류를 먹을 때 토마토를 곁들인 샐러드와 함께하거나 햄버거나 핫도그에 토마토케첩을 뿌려 먹는 것도 바로 이런 이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육류와 토마토는 함께 먹으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서로에게 보완재인 셈이다.

프랑스와 와인

[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토마토=이탈리아, 와인=프랑스…왜?
이탈리아의 토마토만큼이나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또 다른 유럽의 식문화가 있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프랑스의 와인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와인이 온전히 프랑스의 것만은 아니다. 프랑스가 포도를 재배하고, 이를 통해 와인을 생산하게 된 데에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고대 그리스를 통해 프랑스에 들어온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육성하여 와인산업의 중흥을 이끌었던 이들이 바로 로마인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프랑스에 와인을 전파한 로마의 후손 이탈리아를 비롯해 많은 유럽 국가들이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과 호주를 비롯한 신대륙 국가들의 와인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토마토 하면 이탈리아가 떠오르듯 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는 다름 아닌 프랑스다. 이는 프랑스의 지독한 와인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정부는 와인업자들의 징집을 연기한 바 있다. 이유는 전쟁으로 포도원이 쑥대밭이 되기 전에 포도 수확을 마치기 위해서였다. 이미 징집된 군인까지 수확을 돕기 위해 보낼 정도였으니, 프랑스의 와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는 일찍부터 AOC라는 원산지 호칭검사제도를 도입하여 와인의 품질관리에 주력했다. AOC에 따라 프랑스 와인은 포도의 품종과 재배 방법, 수확량까지 규제받고 있으며 와인의 제조방법과 알코올 함유량까지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한다. 또한 이런 방식을 통해 생산된 와인에 고유의 명칭을 붙여 라벨에 기재토록 하고 있는데, 그 종류가 수백 가지에 달해 좋은 와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따로 공부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와인에 대한 사랑 덕분에 프랑스 와인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다. 생산량과 수출량에서는 이탈리아, 스페인과 차이가 크지 않지만 수출액 면에서는 2012년 기준으로 이탈리아의 1.5배, 스페인의 3배에 달한다. 이는 프랑스 와인의 단위당 가격이 다른 국가의 와인보다 더 높기 때문으로, 프랑스 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가 반영된 결과이다. 또한 프랑스 와인은 투자 측면에서도 효과가 탁월하다.

와인은 특성상 보유기간이 길수록 맛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구매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가 상승하기 마련이다. 한편 많은 국가에서 소득이 향상되면서 고급문화인 와인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와인, 그중에서도 고급와인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음용이나 소장, 또는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투자 목적으로 고급와인의 수요가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어서 유럽에서는 18세기부터 와인 경매가 성행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프랑스의 와인이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의 기후와 토질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사랑 덕분에 와인의 맛을 좌우하는 포도 품질에서 프랑스가 최고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47년 생산된 ‘샤또 슈발 블랑’이라는 와인은 가격이 3억원을 호가하고, 병당 가격이 수백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와인 중 상당수가 프랑스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프랑스에 와인은 특별한 존재다. 한때는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한 대상이었고, 현재는 경제적 이득의 원천이자 삶의 동반자이다. 따라서 와인은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그들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빅토르 위고나 보들레르 같은 대문호들이 그토록 프랑스 와인을 찬양하고 경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