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덕혜옹주’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덕혜옹주’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투수에 비유하자면, 손예진은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에서 묵직한 돌직구를 던진다. 변화구도 던질 줄 안다. 그러나 손예진은 끝까지 정면승부를 택했다. 삶 그 자체가 영화였던 덕혜옹주의 삶을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장르와 역할을 가리지 않고 매 작품마다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던 손예진이지만, ‘덕혜옹주’에서만큼은 덕혜옹주로 살았다. 손예진은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대한민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스크린에 수놓으며, 결이 살아있는 감정 연기로 관객들의 가슴에 뜨거운 울림을 선사했다. 그렇게 손예진은 자신의 ‘인생작’을 경신했다.

10. ‘덕혜옹주’에서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치더라.
손예진: 항상 일생일대의 연기를 했었다.(웃음) 아무래도 역사적인 인물을 연기하다보니 기본적인 자세가 달랐다. 사진을 통해 얼굴 볼 수 있고, 여러 기록에도 나와 있는 사람이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가짐부터 달랐던 것 같았다. 관객에게 덕혜옹주의 삶을 내가 정말 잘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10. 출연을 망설이지는 않았나?
손예진: 그렇진 않았다. 이미 소설 ‘덕혜옹주’를 봤었다.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인물이고, 여자의 일생 담고 있으니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자의 일대기는 잘 안 그리는 편이니까. 어쨌든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허진호 감독님이 ‘덕혜옹주’를 만드신다는 얘기를 기사로 접했다. 신기하면서 궁금했다. 과연 감독님이 역사 속의 여성을 어떻게 그리실까. 감독님의 덕혜옹주도 궁금했고, 누가 이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그럼 ‘덕혜옹주’를 선택한 것은 허진호 감독의 영향이 컸나, 아니면 ‘덕혜옹주’가 가진 매력이 더 컸나?
손예진: 반반이었다. ‘덕혜옹주’는 내가 연기 생활을 하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시나리오였다. 일단 덕혜옹주가 워낙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지 않았느냐. 비극적인 역사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만일 신인 감독님이나 내가 잘 모르는 감독님께서 연출하셨다면 고민을 살짝 했을 것이다. 꼭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찍는 법도 없고,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영화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진호 감독님이라 믿고 출연했던 것도 있다. 내가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는 지금 영화보다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 감독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좋은 에피소드들을 넣거나 또는 뺐다. 그렇게 지금의 ‘덕혜옹주’가 완성됐다. 감독님과 다시 같은 작품을 한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10. 덕혜옹주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던 부분들이 있다면?
손예진: 모든 배우마다 각각 다른 입장과 생각이 있겠지만, 내 경우엔 생각을 많이 한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은 무슨 마음일까, 그 인물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고민했다. 그런 상상을 많이 하면 연기가 풍부해진다. 대학 다닐 때 배운 건데,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연기하면 나중에 자신의 연기가 좁아진다고 하더라. 예를 들어, 극중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황에서 자신의 실제 경험했던 유사한 경험을 떠올리면 감정 잡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이상의 연기를 못한다는 뜻이다. 상상을 하고, 생각을 하면 좀 더 연기가 풍부해질 수 있고, 내가 그전까진 미처 몰랐던 지점들이 느껴질 수 있다.

10. 일본어 대사도 정말 잘하던데?
손예진: 이렇게 외국어 대사를 많이 한 게 처음이었다.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아주 간단한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 일본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어 대사들은 동시 녹음했던 것도, 후시로 다시 녹음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시간이 오래 걸려도 끝까지 해야 했다. 외국어를 하면서 연기를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 /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복순(라미란)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손예진: 덕혜에겐 복순 같은 경우가 진짜 유일한 동무였는데, 그 인물마저 곁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니까 슬픔이 배가 됐던 것 같다. 복순에게 얼른 떠나라고 하는 그 장면이 자칫하면 감정 과잉처럼 보일 수 있었는데, 크게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 다행이다.

10. 전체적으로 연기의 테크닉보단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손예진: 연기를 하다보면 어떻게 해야 캐릭터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느끼게 해줄 수 있을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캐릭터를 계산하는 노하우를 쌓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것이 필요 없었다. 정면 승부였다. 어떤 테크닉과 연기의 기술들 모두 다 거짓 같았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내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 만약 거기서 감정을 쥐어짜게 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든 거짓 같았다. 내가 작품에 누가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님이 특별한 주문을 안 하셨던 것이 도움이 됐다. 감독님은 “이 장면에선 좀 더 눈물을 흘려줘야 한다”, “조금 더 슬픈 표정을 지어 달라” 이런 말씀이 없으셨다. 해일 오빠는 눈이 너무 슬픔에 젖은 눈이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오빠를 보면 감정이 올라왔다. 두 사람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 인터뷰②에서 계속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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