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래퍼 파로 / 사진제공=마피아레코드
래퍼 파로 / 사진제공=마피아레코드
“열심히, 힘들게 만든 노래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래퍼 파로(Paroh)가 말했다. 담담한 태도였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을 시작한 지 9년, ‘파로’라는 두 글자가 여전히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나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팝송이 곧 힙합인 줄 알았던 중학생 파로부터, 전 심사위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도 통 편집당해야 했던 ‘쇼미더머니’ 참가자 파로까지, 자칭 ‘유쾌한’ 남자 파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0.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이다. 자기소개부터 해 보자.
파로: 래퍼 파로다.

10. 간결하네.(웃음) 그럼 신곡 ‘서울 살롱’을 소개해볼까?
파로: ‘서울 살롱’은 실제 경리단길에 있는 펍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다. 최대한 빈티지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홈 레코딩을 하는 등 노력했다. 악기들도 실제로 연주를 했고, 녹음된 잡음도 일부러 삭제 안 했다. 노력을 많이 한 덕에 내가 생각한 것에 90% 이상 나왔다.

10. 지난해 발표한 ‘연남동’도 그렇고, 실제 지명이나 장소로 노래를 만드는 이유가 있나?
파로: ‘연남동’을 만들고 알았다. 내가 영감을 받는 소재가 사람과 공간이라는 것을. 요즘은 공간에 꽂혀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특정 장소에 가면 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살롱의 경우, 추억이 있는 장소다. 예전부터 단골이었는데, 주로 힘든 사람들이 많이 온다. 올해 초에 우연히 예전의 내 모습 같은 사람들을 보고 만들었다.

10. ‘선셋 비치’부터 ‘서울 살롱’까지, 모두 정규 앨범 수록곡이라고?
파로: ‘선셋 비치’는 정규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다. 제일 인기 없을 거라는 걸 알고 낸 거다. 내가 꿈꾸는 인생, ‘선셋 비치로 가자. 돈 벌어서 하와이로 놀러 가자’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트랙이다.(웃음) 이번 ‘서울 살롱’은 도약의 의미를 담은 디딤돌 같은, 앨범에서 제일 중요한 트랙이다.

래퍼 파로 ‘서울 살롱’ 앨범 커버 / 사진제공=마피아레코드
래퍼 파로 ‘서울 살롱’ 앨범 커버 / 사진제공=마피아레코드
10. 데뷔 9년차다.
파로: 정확히는 음악을 시작한 게 9년차다. 오버로 데뷔한 지는 얼마 안 됐다.

10. 언더그라운드에서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나?
파로: 래퍼들 사이에서는 (나를) 다 안다. 그런데 이름을 ‘파로’로 바꾸고 노래를 발표하는 데도 많이 없어서 힙합 마니아들은 아직 잘 모른다. 최근에는 “그때 그 사람 아니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파로는 과거 윤대장이라는 이름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했다)

10. 오버그라운드에서 앨범을 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파로: 예전에 홍대 클럽 데이라고, 오디션을 봐서 공연하는 힙합 밴드로 시작을 했다. 클럽 공연에서 3만 원씩 받아가며 일을 했는데, 그 팀이 큰 회사에 스카우트 됐다가 사기를 당하고 해체됐다. 그 다음에 솔로로 나왔는데 조그만 회사에서 또 사기를 당하고 혼자 회사를 차렸다. 세금 50만원을 못 내서 폐업 처리됐다.(웃음) 그때 마지막 앨범을 만들었다. 그 앨범으로 마지막 발악을 해야겠다 싶었다. 전국 방송국을 다 돌아다녔다. 그러던 찰나에 마피아 레코드(현 소속사) 대표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다. 사실 그때 (음악을) 관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앨범이 대표님 마음에 들어서 같이 하게 됐다.

10. 오버그라운드에 진출 후 달라진 점이 있나?
파로: 올해부터 바뀌었다. 음악적 모토도 기분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다 보니까 성격도 바뀌었다. 원래는 남들이 내가 유쾌하다는 걸 아는 게 싫었다.(웃음) 어느 순간부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고, 다 내려놓는 게 인생을 사는 데 편할 것 같았다. 그 뒤로 신나는 음악을 하게 됐다. 이제는 이상한 근성보다는 객관성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욕심 안 부리고 내 음악을 했으면 좋겠고.

10. 원래 음악 모토는 무엇이었나?
파로: 자기 과대 망상?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괜히 남 탓을 했던 것 같다. ‘멋’이 모토였는데, 멋의 기준이 잘못 잡혀 있었던 것 같다.

10. 힙합은 어떻게 시작했나?
파로: 고등학교 힙합 동아리로 시작했다. 그 동아리 출신으로 키네틱 플로우, 그레이, 그리고 내가 있다.

10. 그 전부터 힙합을 좋아한 건가?
파로: 아니다. 선배의 권유로 가입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동네 형이 “학교생활 편하게 하고 싶으면 와라”라고 했다.(웃음) ‘메인 스트림’이라는 동아리였는데, 오디션을 봐서 공연부가 됐다.

10. 랩을 처음 해 보는데 오디션에 붙은 건가?
파로: 중학교 때 (랩을) 해보긴 했다. 마포구 힙합 대회라고 거기 나가면 학교를 안 나가도 된다고 해서 지원했다.(웃음) 그런데 자작 랩을 해서 떨어졌다. 가사를 통으로 잊었다. 아무튼 그때는 힙합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관심 있던 가수가 다 외국 래퍼긴 했지만, ‘팝(POP)이 랩’인 줄 알았었다.

래퍼 파로 / 사진제공=마피아레코드
래퍼 파로 / 사진제공=마피아레코드
10. Mnet ‘쇼미더머니3’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파로: 6개 팀을 정하는 단계까지 굉장히 좋은 반응으로 올라갔었는데 통 편집됐다. 1대1 배틀에서 (내 무대가) 전 심사위원이 기립한 유일한 무대였다. 그런데 재미가 없어서 떨어진 것 같다. 1대1 배틀 끝나고 로꼬한테 전화가 3통 와있었다. “인터뷰를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기에 말을 안 하고 있다고 했더니, “무조건, 이상한 투정이든, 다 말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더라.

10. 한 만큼 방송에 나오지 않았으니, 많이 아쉬웠겠다.
파로: 일주일 넘게 분해서 잠이 안 왔다. 그게(1대1 배틀 무대가) 나오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내가 랩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본방송에서는 비아이가 울고 있는 게 나오더라.

10. 기억에 남는 심사평이 있나?
파로: 타블로가 (내 무대를 보고) “이건 방송에 무조건 나가야한다. 이건 대박이다”고 한 것. 제작진을 바라보면서 “편집점을 만들어 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심사위원 전체가 기립을 했었다.

10. 얼마 전에 시즌 5가 끝났다. 재도전한 참가자들이 많았다.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파로: ‘쇼미더머니’가 어떤 시스템으로 (다음 단계에) 올라가고, 어떻게 해야 (방송에) 나오는지를 이제는 알고 있잖나. 내가 다시 나갔을 때, 100% (방송에) 나올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 나가겠다.

10. 그래도 ‘쇼미더머니’가 힙합이란 장르를 일종의 대세로 만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파로: 힙합이 유행이 된 건 좋다. 힙합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게 ‘쇼미더머니’의 유일한 장점이다. 힙합을 양지로 끌어올린 것 자체가 너무나 대단하다. (아쉬운 점은) 대중들이 그게 다인 줄 아는 것이다. 힙합이면 빠르게 랩 해야 하고, 스웨그(Swag)가 있어야 하고. 예를 들면 도끼가 힙합을 하지만, ‘도끼=힙합’은 아니다. 각자만의 힙합들이 있는데, ‘쇼미더머니’가 힙합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버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빠르게 랩하면 감탄하는데, 사실 느리게 랩 하는 게 더 힘들다.

10. 소속사 식구인 와썹의 나다도 ‘언프리티 랩스타3’에 출연 중이다.
파로: 나다는 이제 진짜 래퍼라고 부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이돌 래퍼 중에 나다 이길 수 있는 여자 래퍼 몇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다의 약점이 심리적으로 약한 것이다. 분위기만 편하게 만들어지면 최고의 퍼포먼스와 래핑이 나온다. 그것만 잘 극복해낼 수 있으면 잘 될 것 같다.

10.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파로: 넘버 원은 딥플로우. 윤미래, 양동근과도 꼭 해보고 싶다. 또 개인적으로 궁금한 사람은 염따다. ‘살아 숨셔’라는 노래를 쓴 형이다. 그 형 음악이 유명하지도 않고, 힙합 신에서만 안다. 그런데 (음악이) 엄청 좋다.

10. 음악 철학이나 신념은 무엇인가?
파로: 기분 좋은 음악을, 오래 만들고 싶다.

10. 파로의 ‘인생 음악’을 추천해 달라.
파로: 힙합을 한다고 해서 힙합만 듣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인생 노래는 너무 많은데… 꿈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 힙합은 스눕독,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또, 최고는 나스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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