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300, X308, X350, X358, X351. 암호코드와 같은 이 숫자들은 재규어의 최상위 플래그십 버전인 XJ의 개발코드다. 재규어 XJ는 1968년 시리즈1부터 시작해 현재 X351까지 9세대를 거쳤다. 약 2년이 지나면 XJ가 탄생한 지 50년의 세월이 된다. 그 가운데 코드명 X351은 지금의 XJ 시리즈로 2009년부터 판매됐다. 그리고 올해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새롭게 한국 땅을 밟았다. 거의 8년만이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재규어 XJ는 영국과 관련된 영화나 왕실 행사 등에 자주 등장한다. 과거 007 영화에서도 스쳐 지나가는 화면에는 꼭 XJ가 비춰진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자존심과 같은 차종이기도 하다. 또한 재규어 창립자인 윌리엄 라이온스(Sir William Lyons)경의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중 살아 있는 생명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자동차다”라는 철학에 부합하는 풍부한 감성을 가진 차이기도 하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개인적으로 재규어는 디자인,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을 재규어만의 감성으로 해석해 조화를 이루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내 마니아 층이 경쟁차 대비 많지 않은 실정이다. 결국 경쟁 차종과 비교해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앞서 말한 4가지 재규어의 감성 때문에 극구 재규어를 고수하는 셈이다. 그런 감성을 다시 느끼기 위해 재규어의 플래그십 세단인 뉴 XJL 3.0D PL(프리미엄 력셔리)을 체험했다.

▲디자인
뉴 XJL의 크기는 길이 5,255mm, 너비 1,899mm, 높이 1,460mm, 휠베이스 3,157mm이다. 과거의 XJ와 마찬가지로 경쟁 차종에 비해 길이와 높이에 있어선 XJ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즉, 길고 낮은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항상 적용된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전면부는 독특한 시그니처 그래픽 '더블 J' 주간 주행등의 적용으로 멀리에서도 한 눈에 재규어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라디에이터 그릴 상부에는 붉은 재규어마크가 자리 잡아 한층 더 재규어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하기 위한 레이더 파트와 함께 있어 자칫 시인성이 좋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측면부는 이안 칼럼의 손길이 닿은 듯 날렵한 숄더 및 웨이스트 라인이 특징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XJ를 가장 멋있게 빛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재규어는 측면부 라인에서 디자인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여기에 245/45/19ZR과 275/40/19ZR 규격의 피렐리 초고성능 타이어 피제로(P-zero)를 장착해 언제든 감성 주행을 위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후면부는 트렁크에 적용된 재규어 엠블렘과 글자가 약간 아쉬움이다. 재규어 엠블렘만 있으면 나았을 것인데 글자까지 넣어 오히려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리어 램프는 LED 형태로 새로움을 넣었다. 범퍼 하단부는 머플러 팁이 타원형으로 변경됐고, 리어범퍼 디플렉터는 크롬 몰딩이 추가되고 유광 검정으로 달라졌다. 다만, 범퍼 중간에 불쑥(?) 장착된 후방카메라는 위치에 의문이 간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실내는 역시 화려하다. 요트에서 영감을 받아 니들 스티칭 방식의 시트 소재로 고급스러움과 내구성을 더했다. 이번에 시승한 프리미엄 력셔리는 력셔리 트림의 상위 버전으로 보다 완성도 높은 인테리어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인터페이스의 변화다. 재규어랜드로버가 자체 개발한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인컨트롤 터치 프로(Incontrol Touch Pro)’가 적용됐다. 인컨트롤 시스템은 인텔 쿼드코어 프로세서, 60GB SSD 등 최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적용되고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선 이동 중 다양한 멀티미디어 경험을 제공한다.
시트는 앞좌석, 뒷좌석 모두 편안한 착좌감을 제공한다. 4인이 장거리를 가기에 더 없이 편안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마사지 기능도 있다. 하지만, 재규어의 디자인 감성을 적용하다보니 실내 크기는 동급에 비해 여유롭지 않은 편이다. 디자인 감성을 위해 포기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조금 더 넓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트렁크 또한 동급 경쟁차종에 비해 적은 편이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성능
XJ의 터보디젤 엔진은 V6형 3.0ℓ다. 최고 300마력, 최대 71.4㎏·m의 성능을 자랑한다. 가히 동급의 디젤엔진 중 우수한 동력성능을 제공한다. 더불어 크기에 비해 총중량이 가벼워 거구임에도 0→100㎞/h 도달시간은 6.2초로 움직임이 경쾌하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앞서 언급한 재규어 감성 중에는 엔진 성능도 한몫을 한다. V6형이지만 그 부드러움은 가히 최고 수준이다. 외부에서 들리는 디젤 엔진음이 실내에선 그저 조용할 뿐이다. 시승에서는 100㎞/h가 약 1,400rpm에서 발생됐다. 하지만 연비주행을 위한 스로틀 개방은 약 96㎞/h 정도가 최적이었다. 추가적으로 최대 토크가 2,000rpm에서 발생하기에 대부분 시내 주행에서는 스트레스 없이 아주 편안한 주행이 가능하다.

초대형 세단이지만 총 200㎞의 시승거리에서 고속화도로는 17.4㎞/ℓ, 시내주행은 9.6㎞/ℓ 의 연비효율을 보여준다. ZF 8단 자동변속기와 연동돼 실제 연비보다 고속도로 정속주행에서 상당한 실력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8단 자동변속기는 디젤엔진과 잘 어울리는 만큼 연비주행에는 최적의 조합이라고 생각된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XJ에는 어댑티브 다이나믹스인 제어 프로그램이 있다. 과거의 XJ는 별 다른 전자 장비 없이 순수 공학적인 계산과 해석으로 재규어스러운 감성 승차감을 만들어 냈지만 지금은 감성 승차감을 어댑티브 다이나믹스로 한층 향상시켰다. 필자는 초고속 주행이나 트랙과 같은 과격한 방향전환보다 일상 수준에서 경쾌한 주행 위주로 시승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XJ의 승차감은 역시나 감성이 묻어나는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됐다. 한편으로는 너무 부드럽다고 여길 수 있지만 출렁거림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언제든 달릴 준비가 돼 있는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숨겨진 셈이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총평
재규어 XJ는 디자인, 파워트레인, 주행성능이라는 여러 감성을 풍부히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감성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XJ를 선택해도 좋다. 플래그십 세단이지만 앞좌석과 뒷좌석 모두에서 재규어를 느낄 수 있다. 파워트레인과 주행성능은 운전석에서 즐길 수 있고, 디자인과 고급스러움, 화려함 등은 뒷좌석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또한, 경쟁 차종들과 비교해 아쉬운 부분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재규어의 기본감성을 바란다면 상당히 매력 있는 자동차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에 재규어 최고의 력셔리함과 화려함을 느끼기 위해 최상위 트림인 오토바이오그래피는 필수항목이다.
[시승]재규어의 자존심, 뉴 XJL 3.0D 프리미엄 력셔리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선뜻 선택하기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페이스의 한글화 등이 지원되지만 지난 20년 동안 XJ는 한국에서 마음 편히 타기 쉽지 않는 차종이었다. 그런 재규어의 XJ가 한층 더 나아가고 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분명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뉴 XJ 3.0D 프리미엄 력셔리의 판매가격은 1억 4,600만원이다.

박재용(자동차미래연구소장, 이화여대 연구교수)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