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파업절차·요식적 쟁의조정·대규모 교섭단 등 "잘못된 관행 개선"

'상견례, 교섭, 회사안 요구, 결렬, 그리고 파업'
현대자동차 노사가 1987년 노조 설립 이래 매년 되풀이한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과정이다.

30년 가까이 이런 교섭의 틀이 바뀌지 않았다.

노사 교섭 대표들은 상견례에서 인사한 후 협상을 시작, 10여 차례 만나 노조의 요구안을 검토한다.

교섭장에서는 이것을 '1회 독'이라고 한다.

노조의 요구안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는 의미다.

'1회 독'은 요구안의 배경을 설명하고, 회사의 경영현황 설명을 포함해 노사의 입장을 밝히는 절차다.

노조는 이 절차가 끝나면 바로 회사에 "제시안을 내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회사는 "대화가 더 필요하다"며 당장 제시안을 내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조는 이에 맞서 "회사의 교섭 태도가 불성실하다"며 '교섭 결렬'을 선언한다.

이때부터 파업수순을 밟는 것이다.

노조는 쟁의발생 결의, 중앙노동위원회 노동쟁의 조정신청, 조합원 파업투표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29년 동안 교섭 틀이 이런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현대차 노조 내부에서 노사협상 방법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매년 반복되는 교섭과 파업의 악순환을 막아보자"면서 최근 노조소식지를 통해 화두를 던졌다.

노조는 그러면서 책임을 회사에 돌렸다.

역대 임단협 교섭을 두고 "단체교섭이 시작되면 사측은 항상 어렵다고 하거나 노조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뒤로 빠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측은 알맹이 빠진 개악안을 내밀고, 노조와 조합원들은 사측의 행태에 분노하며 쟁의발생 결의하는 등 본격 투쟁에 돌입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사측이 일찌감치 제시안을 내고 성실히 협상한다면 노사관계는 파행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노조의 분석이고 주장이다.

사측도 교섭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노조의 시각과는 다르다.

제대로 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가 제시안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섭결렬을 선언하고 파업까지 밀어붙이는 구태에서 노조가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근로조건이나 임금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매년 정치적 이유나 상급단체 투쟁일정에 맞춰 '파업을 위한 파업'을 강행하는 것을 이제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개선을 촉구한다.

5년 넘게 현대차 노사협상을 이끌어 온 윤갑한 사장도 담화문을 내고 이런 문제를 꼬집었다.

윤 사장은 "거의 매년 파업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피해를 겪었지만 엄청난 생산·임금 손실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파업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며 "정해진 수순처럼 교섭-결렬-파업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교섭으로 충분히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데 왜 실익 없이 대외적 비난만 초래하는 파업을 선택해야 하느냐"고 노조에 물었다.

또 노사의 이견을 조율하거나 합법·불법파업 결정 단계이기도 한 노동위원회의 노동쟁의조정신청 과정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도 있다.

형식적으로 흐르거나 요식행위가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이와 관련해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대기업 노사가 노동위의 조정신청 과정을 요식행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이 과정을 없애거나 대체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섭할 때마다 엄청난 인원이 협상장에 나오는 것이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본교섭할 때 노사 교섭대표와 참관자까지 50여 명이 참석한다.

참석 인원을 줄일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협상 내용을 꿰뚫고 있는 노사의 실무진이 만나 집중적으로 교섭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장과 위원장은 상견례와 마지막 협상타결 조인식에만 참석하고, 평소에는 경영과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제시됐다.

제도나 규정 등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화와 양보로 교섭을 타결하겠다는 성숙한 의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권혁 부산대 교수는 27일 "선진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서 단체교섭의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며 "교섭 과정에서의 소모적 갈등은 노사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고, 기업 경쟁력만 저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young@yna.co.kr